“서양판 곰탕인 치킨 수프를 먹으면서, 내가 누군가에게 곰탕을 끓여줄 수 있다는 사실과 누군가가 끓인 곰탕을 내가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이미연 ‘카운터 일기’
올 2월 취재차 베트남에 있던 나는 그들에게 반갑지 않은 이웃이었다. 출국 당시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19 감염자가 폭증하고 있었다. 숙소 주인은 ‘중국에 다녀왔는지 확인해야 한다’며 여권의 처음부터 끝까지 사진을 찍어 갔다. 2월 중순을 지나며 한국 내 바이러스가 대구를 중심으로 폭증했다. 그 뒤로 한국인이라는 말 한마디에 슬며시 마스크를 올리는 이들을 심심치 않게 만났다.
한국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숙주 취급을 받는 경험은 유쾌하지 않았다. 잠시 머물다 가는 여행자여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곳을 터전으로 삼고 사는 한국 교민들의 삶은 어찌 할까.
외국에서 사는 이들의 삶을 떠올리는 동안 뉴욕의 매서운 겨울을 뚫고 치킨 수프를 전해주던 이웃의 이야기를 읽었다. 위 문장의 주인은 뉴욕에서 바리스타로 일한다. 어느 겨울날, 모진 한파와 강풍을 이기지 못하고 카페 유리문이 깨졌고 찬 바람이 드는 문을 종이 박스로 급히 막아 놓고 추위에 떨며 일했다. 그 모습을 본 단골손님이 치킨 수프를 끓여 가져다줬는데 유난히 뜨겁고 기름지고 맛있었다고. 그이는 시련 속에서도 곰탕의 온기를 나눠 줄 이웃을 두고 산 거다.
뒷산으로 산책을 다녀왔다. 인적이 드문 숲속에서 마스크를 벗고 처음 숨쉬기를 배운 것처럼 조심스럽게 숨을 들이마셨다. 상쾌한 공기가 가슴 깊은 곳까지 닿았다. 내 발 옆에는 겨울을 이겨낸 새순이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봄의 기운이다. 우리의 마음은 다시 겨울이 온 것처럼 얼어붙어 있지만 치킨 수프를 함께 나눠 먹는 배려와 돌봄이 교민들 주위에 머물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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