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용성 다음은 안시성-김부검?… 풍선효과 우려에 정부 “과도기 현상”[인사이드&인사이트]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9일 03시 00분


부동산 규제정책 효과 논란

이새샘 산업2부 기자
이새샘 산업2부 기자
정부가 경기 수원시 영통, 장안, 권선구와 의왕시, 안양시 만안구를 조정대상지역으로 추가 지정하고 조정대상지역 전체에 대한 각종 규제를 지난달 20일 강화했다. 지난해 발표한 12·16부동산대책 발표 뒤 ‘수·용·성(수원 용인 성남)’ 지역 아파트 가격이 급등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발표 이후 부동산 시장의 반응은 냉소적이었다. 부동산 관련 온라인 카페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곧바로 ‘안·시·성(안성 시흥 화성)’ ‘김·부·검(김포 부천 검단)’ ‘오·동·평(오산 동탄 평택)’ ‘남·산·광(남양주 산본 광명)’ 등 다음 투자처가 어딘지를 점치는 신조어가 쏟아졌다.

○ “‘수용성’ 다음 찾아라” 움직이는 투자수요

사람들이 다음 투자처를 찾아 움직이며 풍선효과는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달 20일 조정대상지역 확대 이후 경기 아파트값은 2월 넷째 주 0.44%에서 3월 첫째 주 0.39%로 오름폭이 둔화했다.

반면 인천은 0.4%에서 0.42%로 오름폭이 더 커졌다. 광역급행철도(GTX) B노선 신설 호재가 있는 연수구가 송도 위주로 가격이 오르며 0.82%나 올랐다. 서구도 청라, 가정동 등의 새 아파트가 강세를 보이며 0.58% 상승했고, 남동구는 0.33% 올랐다. 인천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대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도 이 동네에서는 별 영향이 없다”며 “직접 볼 필요 없으니 전화로 거래하겠다는 타지 투자자들의 문의가 많다”고 전했다.

경기의 비규제지역인 군포(1.27%) 안산(0.59%) 광명시(0.6%) 등도 가격 상승폭이 커졌다. 주로 GTX나 신안산선 등 교통호재가 있으면서, 아직까지 9억 원 이하 아파트가 많아 상승여력이 있는 것으로 점쳐지는 지역이다.

서울에서도 9억 원 이하 아파트 단지가 많은 지역은 가격 오름세가 지속되고 있다. 이른바 ‘노·도·강’으로 불리는 노원, 도봉, 강북구는 2월 넷째 주와 3월 첫째 주 모두 0.08∼0.09%대의 가격 상승률을 보였다. 서울 강남권이 하락세를 기록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들 지역 아파트를 지방에서 올라와 ‘원정 매매’한 거래는 세 구를 합쳐 지난해 11월 341건에서 499건으로 증가했다. 법인이 개인의 아파트를 매매한 거래도 11월 14건에서 1월 62건으로 크게 늘었다. 일반적으로 법인 매수나 타 지역 매수는 실수요자보다는 가격 상승을 기대하는 투자 수요로 본다.

○ 정부 “‘수용성’은 과도기적 현상”

하지만 정부의 현실인식은 시장 반응과 차이가 있는 듯하다.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26일 공식 블로그에 올린 ‘수용성 집값 상승은 풍선효과 아닌 과도기 현상’이라는 글을 통해 “이른바 ‘풍선효과’는 집값을 안정시키기 위해 맞춤형 규제를 하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규제 수준이 낮았던 지역을 중심으로 집값 상승이 나타나는 과도기적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박선호 국토교통부 1차관은 지난달 21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서울의 강남이 먼저 오르고, 약간의 시차를 두고 경기 지역에서 오르기 시작하는 현상은 집값의 일반적인 상승 패턴”이라며 “교통여건이 불편했던 지역에 GTX와 신안산선 등 새로운 교통망 확충 계획이 발표되면서 지역 가치가 높아진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된 지역의 수도권 외 지방 외지인 매수와 법인의 개인 주택 매수가 늘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최근 ‘수·용·성’의 상승세는 해당 지역의 교통호재가 발생해 투기 수요가 몰린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 정부가 발표한 12·16대책으로 촉발된 것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런 설명은 통계를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납득하기 힘든 면이 있다. 국토부가 투기 수요를 보여주는 통계로 활용한 법인의 개인 아파트 매매 건수를 보면 수원에서 지난해 11월 175건이었던 거래가 12월에는 168건으로 소폭 감소했다. 그런데 올해 1월에는 245건으로 다시 대폭 늘었다. 12월에 법인 매수세가 주춤했다가 다시 급증한 것은 12·16 대책의 영향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함영진 직방 데이터랩장은 “12·16대책 이후 고가 주택을 중심으로 서울 집값이 안정세를 보이면서 투자 수요가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한 지역으로 옮겨간 것인데, 이를 부인한다면 12·16대책의 효과가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며 “앞으로도 이 같은 국지적 집값 급등세는 계속해서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17년 전 ‘전국이 규제지역’

20여 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었다. 외환위기 이후 부양책이 효과를 내는 상황에서 증시 침체와 저금리 상황이 맞물리면서 2000년대 초 부동산 시장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정부는 2002년 1월 “부동산 투기 우려 지역에 ‘투기과열지역’을 지정하겠다”고 발표했다. 5월에는 서울 전역을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하겠다는 방침을 밝혔고, 9월에는 서울 전역을 포함해 경기, 인천 일부 지역을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했다.

하지만 한번 시작된 부동산 투자 열기는 정부 규제를 피해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기 일쑤였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이후 2003년 한 해에만 5차례 이상 투기과열지구를 추가 지정해 결국 전국 대도시 대부분 지역이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되기에 이른다. 첫 지정 이후 1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벌어진 일이다.

그 과정에서 투기과열지구에 대한 규제도 더욱 강화됐다. 초기만 해도 투기과열지구 제도는 지정되면 아파트 분양권 거래를 계약일로부터 1년간 못하도록 막는 등 과열된 분양 시장을 냉각시키기 위한 목적이 강했다. 하지만 이후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투기과열지구에 한해 강화하거나, 투기과열지구 내 주택을 대상으로 각종 세금을 중과하는 등 대출, 세제 규제가 추가돼 주택시장 전반을 규제하게 됐다.

김대중 정부 말미에 시작돼 노무현 정부 내내 계속되던 ‘투기와의 전쟁’은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미분양 사태가 시작되고서야 끝났다. 2007년 지방을 시작으로 2008년 수도권 대다수 지역이 투기과열지구에서 해제됐다. 2011년 집값 상승의 진원지인 서울 강남 3구(강남, 송파, 서초구)까지 투기과열지구에서 해제된 뒤로는 2016년 조정대상지역이 신설되고 2017년 투기과열지구가 부활할 때까지 특정 지역을 규제 대상으로 삼는 제도는 한동안 없었다.

○ 미국 금리 인하, 부동산 시장 땔감 될까

문제는 사람들이 이런 경험을 통해 정부 규제가 시장을 이기기 힘들다고 학습했다는 점이다. 정부가 규제를 강화하면 규제를 받는 지역은 잠시 냉각되지만 다른 지역이 상승하고, 결국 시장 전체가 상승세를 타는 양상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도 반복되고 있다.

넘치는 유동성, 경기 부양을 위한 재정 쏟아 붓기, 침체된 증시와 저금리라는 여건도 2000년대 초와 비슷하다. 이런 상황에서 이달 초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위축을 우려하면서 기준금리를 0.50%포인트 전격 인하한 1.00∼1.25%로 결정하면서 국내 부동산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한국은행도 곧 금리를 인하하는 것 아니냐”는 기대가 팽배해진 상황이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최근 과천, 청라 등에서 분양한 아파트를 보면 코로나19 사태에도 수만 명이 청약을 하고 있다”며 “수도권 아파트에 대한 투자 수요가 살아있는 상황에서 4월 말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유예기간이 끝난 뒤 아파트 분양이 급감하면 ‘공급 절벽이 온다’는 위기의식이 매수심리를 더 부추길 수 있다”고 말했다.

아무리 둑을 높이 쌓아도 물이 그 이상으로 불어나면 둑은 넘친다. 대출 규제나 과세 강화 같은 거래 규제 정책은 임시방편일 뿐 시간이 지나면 부동산 가격의 변동 폭만 키우는 악수로 작용할 수 있다. 특정 지역의 집값만 잡을 것이 아니라, 대도시 정비사업 정상화 등 수요에 맞는 공급 정책과 부동산 직접투자 외의 투자 활성화 대책 등 숲 전체를 보는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새샘 산업2부 기자 iamsam@donga.com
#부동산 규제정책#투기과열지구#비규제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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