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중대는 전사 26명, 부상 89명, 실종 3명의 피해를 입었다. 살아남은 중대원들도 이질 등 각종 전염병에 시달렸다….’ 미국 역사가 겸 칼럼니스트로 6·25전쟁에 참전한 시어도어 페렌바크의 저서 ‘이런 전쟁(this kind of war)’에는 당시 유엔군이 겪은 ‘전염병 수난사’가 곳곳에 적혀 있다. 폐허가 된 전장과 위생시설 부족으로 이질과 신증후군(유행성)출혈열, 결핵 등이 만연하면서 목숨을 잃는 장병이 속출했다는 것이다.
그 와중에 발진티푸스에 걸린 중공군 무리가 압록강을 건너와 북한 주민들을 전염시키자 중국 공산당은 미 공군이 세균전을 감행했다는 선전전을 벌였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전투원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는 생물무기의 공포를 극대화하고 교전국의 부도덕성을 부각하려는 정치적 거짓 선전이자 음모였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를 강타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도 이 같은 음모론의 표적이 되고 있다. 코로나19가 중국군의 생물무기 개발 과정에서 유출된 바이러스라는 주장이 퍼지면서 공포와 불안을 더 부추기는 형국이다. 중국 정부의 강력한 부인과 과학계의 해명에도 ‘코로나 음모론’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진 데는 코로나19 사태가 생물무기의 가공할 위력에 주목하는 계기로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필자는 본다. 실제로 눈에 보이지 않고, 냄새도 나지 않는 치명적인 세균과 바이러스를 무기화한 생물병기의 위협은 핵무기를 능가한다.
무기와 장비는 전혀 건드리지 않고 사람만 ‘선별 파괴’해 전쟁 수행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아무리 최첨단 무기가 있어도 운용 인력이 생물무기에 감염되거나 희생되면 ‘고철덩어리’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군내 코로나19 확진자가 속출하자 군이 전투기와 정찰기, 함정 등 핵심 전력 운용·정비요원의 감염 예방에 발 벗고 나선 것에서도 생물무기의 위험성이 체감된다. 군 통수권자를 비롯한 전쟁 지도부도 절대 안심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전장 범위가 광범위하다는 것도 생물무기의 위력을 배가시킨다. 항공기에 실어 에어로졸 형태로 공중 살포하거나 상수도에 흘려 넣을 경우 전후방 가릴 것 없이 상당한 지역이 오염돼 막대한 피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뉴욕타임스는 지난해 1월 이론적으로는 탄저균 1갤런(약 3.8L)으로 전 인류를 숨지게 할 수 있다면서 핵무기보다 치명적인 것이 생물무기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특히 대한민국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생물무기 위협에 노출돼 있다. 수십 년 전부터 생물무기 개발에 주력한 북한과 휴전선을 맞대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생물무기 수준은 미국과 러시아, 중국에 버금갈 정도라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2016 국방백서에 따르면 북한은 탄저균과 천연두, 페스트 등 13종의 생물무기를 자체 배양하고 생산할 능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탄저균과 천연두의 치사율은 각각 80%, 30%에 달한다. 코로나19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치명적이다. 북한은 평양의 국방과학원 산하 미생물연구소 등 20여 곳에서 생물무기의 연구 및 배양시설을 가동 중인 것으로 한미 정보당국은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생물무기가 실전용이라고 경종을 울린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미 국방부에서 핵·화생방 담당 차관보를 지낸 앤드루 웨버는 2018년 미들베리대 국제학연구소를 통해 펴낸 보고서에서 “북한은 핵보다 생물학적 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훨씬 크다”고 경고한 바 있다. 존 루드 미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도 올 1월 미 하원 군사위원회에 출석해 “중국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다른 지역과 국가로 급격히 확산되는 것에서 보듯 북한의 생화학무기는 미국과 한국 등 관련국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우려사항”이라고 강조했다.
주한미군이 2004년부터 탄저균과 천연두 백신 접종을 의무화한 것도 북한의 생물무기가 실체적 위협임을 뒷받침하는 사례로 볼 수 있다. 군 지휘부는 코로나19 사태를 대북 생물무기의 대응태세를 점검하고 미비점을 보완하는 계기로 활용하길 바란다. 작금의 위기를 교훈으로 삼아 차후에 닥칠 수도 있는 더 큰 위기를 대비하는 것은 국가안보의 기본 중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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