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오늘 안 해도, 실수해도 괜찮아[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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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발표를 안 하려는 아이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네 살 난 민주는 얼마 전부터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어느 날 돌아와서는 현관에서부터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말한다. 내일 한 사람씩 발표를 해야 하는데, 엄마가 선생님한테 말해서 자기 좀 안 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부끄러워서 도저히 못하겠다며 서럽게 울었다.

주시 불안이 있으면서 평가에 예민한 아이들이 있다. 이 아이들은 사람들이 쳐다보고 무언가 수행해서 평가 받아야 하는 상황에 거부감이 있다. 이럴 때 너무 몰아붙여서는 안 된다. 부담이 심해져 부정적 경험을 하고 그 기억 때문에 극복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앞 사례와 같은 상황이라면 “그래, 알았어. 이번에는 네가 정 발표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대신에 그 수업을 편안한 마음으로 참여하고 다른 아이들 발표를 잘 듣고 오렴. 다른 아이들이 무슨 발표를 했는지 엄마도 궁금하니까 집에 와서 얘기해 줘.” 이 정도로 말해주고 그날 수업을 좀 편안하게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이것이 수업 시간 내내 ‘오늘 안에 나를 시킬 수도 있어. 시키면 어쩌지?’ 바들바들 떨면서, 다른 친구들이 어떻게 발표하는지를 못 보고 못 듣는 것보다 더 낫다.

그날 발표 시간을 보니 어떤 친구는 이상하게 발표하기도 한다. 아이는 속으로 ‘나보다 못하는 애도 있구나’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친구들도 아무렇지도 않게 발표를 하고 앉는다. 아이는 ‘아 이렇게도 하는구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또 어떤 친구는 좀 웃기게 발표를 한다. 앉아있는 친구들이 ‘킥킥’거린다. 이전까지는 그런 상황에서 웃으면 비웃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아이도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자기는 그 친구를 비웃는 것이 아니었다.

아이가 집에 와서 “걔는 있잖아. 거꾸로 말해가지고 아이들이 웃었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면 “너는?”이라고 넌지시 물어봐준다. 아이가 “나도 웃음이 나오는데, 걔가 속상할까봐 안 웃었어”라고 대답할 수 있다. 엄마는 다시 “웃음이 나올 때 걔를 무시하는 거야? 그냥 웃긴 거야?”라고 묻는다. 아이가 “그냥 웃긴 거지”라고 말하면 “딴 친구들도 그래. 네가 실수하거나 했을 때 웃는 건 너를 비웃는 게 아니야” 가르쳐주면 된다. 이런 것들을 편안한 마음으로 경험해 봐야 한다.

아이가 힘들어하는 것을 매번 빼주라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날’ ‘당장’ 꼭 해야 한다고만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의 육아는 너무 비장하다. 부모가 매 순간 비장하면 아이는 편안히 배울 수가 없다. 육아는 길다. 오늘은 꼭 안 해도 된다. 오늘보단 덜 긴장하고 덜 불안한 상황에서 다른 친구들이 하는 것을 보면서 그 상황에 대해서 편안하게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 시간이 편안해야 다음 상황에서 더 잘 겪어나간다. 그 기회를 주라는 것이다.

발표를 안 해도 “그 시간 동안에 잘 참여하고 다른 아이들 발표를 잘 들어 봐” 하는 것은, 아이를 그 상황의 주인으로 만들어주기 위해서다. 다른 아이들이 하는 것을 보고 듣는 것은 아이가 그 상황에서 약간 주도적이 되는 것이다. 주도적이 될 때 그 상황이 조금은 덜 두려워진다.

물론 아이에게 방향을 제시해줘야 한다. “매번 피할 수만은 없어. 좀 준비가 안 된 채로 발표를 해야 될 때도 있고, 좀 잘 못해낼 때도 있기도 해. 우리는 그런 일을 많이 겪기 때문에 그 정도로 해내는 것도 경험할 수밖에 없어. 못해도 발표해야 될 때도 있고 그런 거야.” 이렇게 방향은 얘기해준다. 또 “굉장히 중요한 발표는 조금 연습해서 가는 것이 맞긴 해. 틀려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야”라는 말도 해준다.

‘혹시 이랬다가 아이가 매번 안 하려고 들면 어쩌나, 힘든 것은 극복하지 못하는 아이가 되면 어쩌나, 혼자만 덜떨어진 아이가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드는가. 그런데 부모들도 어린 시절 어려웠던 무언가가 시간이 지나고 좋아졌던 경험들이 다 있지 않은가. 어린아이들은 그들이 가진 불안이나 긴장감을 좀 완화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거부감을 느끼는 상황에서 그것을 진정으로 극복하기 위한 방법은 ‘절대 해야 돼. 안 하면 큰일 나’가 아니다. 그것을 편안하게 경험한 기억이다. 거부감을 느끼는 것일수록 긍정적으로 경험되어야 제대로 배우는 일이 많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거부감 극복#발표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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