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랜만의 주말 외출[이재국의 우당탕탕] <34>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10일 03시 00분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주말마다 집에만 있은 지 한 달이 넘었다. 아이는 개학이 연기됐고, 아내는 재택근무로 삼시세끼를 집에서 해결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지붕을 뚫을 기세였다. 이번 주말은 바람이라도 좀 쐬자며 무작정 집을 나섰다. 어디가 안전할까? 고민하다가 원주로 목적지를 정했다. 얼마 전 아내가 가보고 싶다고 얘기한 산중서점 ‘터득골’에 가보고 싶었다. 산중에 서점이 있다니, 사람 많은 곳보다는 안전하겠지 하는 생각과 산속에서 책을 읽다 보면 스트레스가 풀리겠지, 무언가 터득할 수 있겠지, 생각하며 향했다.

고속도로는 한산했다. 휴게소를 건너뛴 채 바로 원주 시내로 향했고, 언젠가 원주 향토 음식을 소개하는 TV 프로에서 ‘장칼국수’를 봤는데, 정말 먹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맛집에는 사람이 많을 것 같아서 원주에 사는 후배에게 전화했다. 정말 ‘안 유명하고 맛있는’ 장칼국수 집을 알려달라고 했더니, 단계동에 있는 집을 소개해줬다. 가보니 손님은 한 테이블밖에 없었다. 우리는 세 그릇을 시켜 맛있게 먹었다. 구수함과 얼큰함이 조화를 이루고, 특히 마늘이 많이 들어간 겉절이 김치가 맛있었다. 배도 채웠겠다, 우리는 30분 정도 차로 달려 산중서점에 도착했다.

가파른 언덕을 몇 차례 오르니, 작은 간판이 보였다. 이런 곳에 서점이 있다니, 서점 주인도 궁금했고 오는 손님도 궁금했다.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기분이 좋아졌다. 따뜻한 햇살, 차곡차곡 꽂힌 책들, 각자 자기 자리에 앉아 독서하는 사람들. 우리는 커피와 브라우니를 시키고 읽고 싶은 책을 골랐다. 각자 책 한 권씩 사서 한동안 말없이 읽고 있는데 창밖으로 눈발이 날렸다. 1시간 전에는 햇살이 가득했는데, 산중이라 그런지 날씨가 변덕스러웠다.

커피가 식는 줄도 모르고, 오랜만에 독서 삼매경에 빠졌다. 보통의 하루 같은데 이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간 사람 많은 장소는 자제하고, 식당보다는 집에서 식사를 해결하다 보니 사람이 그립고, 바깥공기가 간절했던 것 같다. 3시간 정도 독서를 하고 나니, 아내가 가보고 싶은 곳이 있다며 치악산 구룡사 사진을 보여줬다. 여기서 40분 정도 거리, 우리는 치악산으로 향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니 어느새 오후 4시가 넘었고 산을 올라가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었다.

아직 얼어있는 계곡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니 구룡사가 눈에 들어왔다. 구룡사는 당연히 ‘아홉 마리 용의 전설’이 있는 곳인 줄 알았는데, ‘아홉 구(九)’자를 ‘거북이 구(龜)’자로 고쳐 써 지금은 용의 기운과 거북이의 기운을 모두 느낄 수 있었다. 근처 찻집에서 대추차로 몸을 녹이고 주차장으로 내려오는데, 갑자기 아내가 소리쳤다. “우리 한 끼밖에 안 먹었잖아?” “서점에서 브라우니 먹었잖아!” “그건 간식이지. 저녁은 소고기 먹자!” 원주 중앙시장 소고기 골목에 가서 소고기 모둠에 된장찌개까지 먹고 나니 시간은 오후 7시 반. 이제 서울 가자! 그렇게 당일치기 여행을 하고 집에 와서 오랜만에 숙면을 취했다. 다음 날이 월요일이라 출근길이 조금 피곤했는데, 회사 앞에 노랗게 움튼 개나리를 보니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래, 봄이다. 봄은 온다. 기지개를 켜고 봄날로 가자!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코로나19#재택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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