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때문에 외국 친구들에게 연락이 많이 온다. 다들 뉴스에서 봤다고, 한국은 상황이 괜찮냐고 묻는다. 나는 직업상 재택근무를 할 수 있어서 밖에 거의 안 나간다고 말한다. 그럼 친구들은 음식은 어떻게 구하는지, 식량은 사재기를 하는지, 강의는 어떻게 되는지 또 묻는다.
코로나가 한국에 퍼진 지 거의 두 달이 됐고, 31번 환자 이후 상황이 심각해진 지 한 달쯤 지났다. 식량, 화장지 같은 기본 물품을 구하는 데 한 번도 문제가 없었다. 온라인 쇼핑, 배달 택배도 잘됐다. 이것은 시장 신뢰와 상관 있는 것 같다. 사재기하지 않아도 물건을 계속 살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아무도 사재기를 안 하고 모두가 필요할 때 산다. 이런 면에서 한국 상황이 상대적으로 더 심각한데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다른 나라에 비해 쓸데없는 공황상태에 빠지지 않는 것 같다. 마스크와 손 소독제는 수요가 갑자기 늘어난 것이기 때문에 좀 다른 이야기다.
몇 년 전까지 북한이 미사일이나 핵실험을 할 때도 친척이나 친구들이 전화해 걱정하고 안부를 물었다. 그때도 한국은 공황상태에 빠지는 등의 혼란 없이 정상적으로 삶이 돌아간다고 설명했다. 두 상황이 같은 맥락인지 모르겠지만 북한이 핵실험을 할 때도, 코로나가 심한 요즘도 한국에서 산다는 것이 불안하지 않다. 주변 사람들도 불안해하지 않기 때문에 나도 불안하지 않은 듯하다.
사람은 낙천주의적 편견을 가졌다고 한다. 한 실험 결과에 따르면 사람들 중 80%가량은 미래에 좋은 일이 생길 가능성을 과대평가하고, 나쁜 일이 생길 가능성은 과소평가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담배가 암을 유발하는 것을 알지만 그 일이 내게 생길 가능성은 과소평가하는 식이다.
혹시 내가 불안해하지 않는 것이 그 때문일까. 아닌 것 같다. 오히려 한국 사회가 코로나를 잘 이해하고, 그에 따라 낙천주의적 편견을 이겨냈기 때문에 불안해하지 않는 것 같다. 다시 말해 낙천주의적 편견 때문에 종종 사람들은 예방에 실패한다. 최근 이탈리아의 길거리 인터뷰를 봤는데, 그곳 사람들은 ‘사회적 거리 두기’에 대해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한국은 반대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처음부터 투명하고 상세하게 안내하고, 대부분의 사람은 책임감을 가지고 안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며 예방법을 실행하고 있다. 이것은 코로나 때문에 하루 만에 이뤄진 결과가 아니라 문화나 교육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한국 사람은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대단히 깊다. 상황을 잘 인지할 수 있는 판단력과 새로운 상황을 배우고 적응하는 적응력도 뛰어나다.
이런 유행병은 정부 혼자서 이겨낼 수 없다. 국민도 함께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한국 사람의 교육 수준과 책임감은 한국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있어 가장 중요한 자산 중 하나다.
전 세계가 한국의 코로나 사태 대응을 주목하고 있다. 매일 해외 언론은 한국의 보건시스템을 칭찬한다. 작년 미국 민주당 대통령 선거 후보들이 약속한 보편적 건강보험제도 관련 보도에서도 한국이 많이 언급됐다. 요즘 코로나 때문에도 많이 언급되고 있다. 이는 미국 대선까지 계속될 것 같다. 내 생각에 한국의 보건시스템과 건강보험제도만큼 중요한 것은 한국 사람의 책임감, 질병 예방에 관한 기본 지식, 문화다. 내가 한국에서 덜 불안한 것은 건보제도보다도 한국 사회에 대한 신뢰 덕분이다.
또 한 가지 놀랐던 것은 대학들의 적응력이다. 모든 대학이 초기부터 코로나 관련 위원회를 구성하고 열심히 예방책을 만들었다. 대부분 대학이 개학을 2주 연기하고 3월 강의를 원격으로 하기로 했다. 우리 대학(한국외국어대)도 재빨리 원격강의에 관한 한국어-영어 매뉴얼을 만들어 모든 학과의 조교들을 교육하고 교수들에게도 이를 자세하게 안내했다. 교수, 학생들도 처음에는 혼란스러운 것 같았지만 적응력이 좋은 만큼 빨리 정상화될 것 같다. ‘사회적 거리’를 둘 필요 없는 건강한 날이 빨리 오기를 희망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