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나민애 시가 깃든 삶]〈236〉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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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감 ―박소란(1981∼)

죽은 엄마를 생각했어요/또다시 저는 울었어요 죄송해요
고작 감기일 뿐인데/어디야? 꿈속에서
응, 집이야, 수화기 저편 엄마의 목소리를 듣는데
내가 모르는 거기 어딘가 엄마의 집이 있구나 생각했어요
엄마의 집은 아프지 않겠구나
병원에는 가지 않았어요
고작 감기일 뿐인데/식후 삼십분 같은 말을 생각했어요
약을 먹기 위해/밥을 먹는 사람을
마스크를 쓰기 위해 얼굴이 돋아난 사람을

(중략)

어디야? 전화를 받지 않는 엄마/거기 먼 집
닫지 못한 문이 있고 여태/늦된 겨울을 건너다보고 있을
엄마, 감기 조심해


사람은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들 한다. 세상 누구보다 자신을 가장 사랑하고 자존감을 높이라고들 한다. 이 말은 정답 같다. 그런데 우리는 가끔 오답을 선택하곤 한다. 어떤 사람은 남을 위해 산다. 자기 자신보다 남을 더 사랑하기도 한다. 이런 일에 거창하게 희생이라든가 위인이라는 말을 붙일 것도 없다. 평범한 나도, 평범한 너도 종종 할 수 있는 일이니까.

예를 들어 보자. ‘이까짓 못난 인생 망쳐 버릴까. 확 죽어 버릴까’ 이런 생각이 들 때, 모진 마음이 약해지는 건 자신을 지극히 사랑해서가 아니다. 지금 내가 죽으면 엄마가 얼마나 슬퍼할까 걱정이 앞선다. 지금 내가 잘못되면 아이들이 얼마나 괴로워할까 두려움이 앞선다. 그래서 정말 절망적일 때 나는 나 자신이 아니라 엄마를 위해, 아이를 위해 일어서게 된다.

이 시에도 그런 사람이 나온다. 혼자서 앓는 한 사람이 서러워 우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에게는 병원 갈 힘도 없고 약을 챙겨주는 사람도 없다. 쓰러지고 싶은 저 인생을 잡아주는 건 ‘엄마 생각’ 하나뿐이다. 놀랍게도 엄마 생각은 식후 30분이 되고, 마스크가 되고, 약이 되어 혼곤히 쓰러진 저 사람을 지켜줄 것이다.

3월은 조금 아픈 달. 땅도 얼음이 풀리느라 몸살을 하고 환절기에 우리도 기침하는 달. 세상의 수많은 딸과 아들이 이 감기를 무사히 넘기기를 빈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독감#박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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