뻥 뚫린 제주해군기지[횡설수설/이진구]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16일 03시 00분


2010년 창설된 해군 최초의 기동부대인 제7기동전단은 ‘세계 어디서나 작전 수행이 가능하고, 적이 넘볼 수 없는 부대’가 창설 목표다. ‘신의 방패’라 불리는 최첨단 이지스함(AEGIS)도 갖고 있다. 그런데 이 부대의 본부가 있는 제주해군기지가 민간인 시위대 2명에게 뚫리는 망신을 당했다.

▷7일 오후 2시경 시위대 2명이 기지 외곽 펜스를 가정용 펜치로 절단하고 들어와 1시간 반 넘게 부대를 활보했다. 어제 합동참모본부 발표에 따르면 침입 장소는 감시초소에서 불과 50m 떨어진 곳이었다. 능동형 감시 시스템인 외곽 경계용 폐쇄회로(CC)TV는 녹화만 됐을 뿐 경보음은 작동하지 않았다. 지난해 여름 태풍에 훼손된 CCTV 15개 중 일부를 신형으로 교체했는데, 기존 프로그램과 호환이 되지 않아 소리가 나지 않는데도 그동안 방치했다고 한다. 침입 1시간여가 지나서야 펜스가 뚫린 사실을 발견했고, 5분대기조는 당직사관의 미흡한 대응으로 40분이 더 지난 후에야 출동했다. 군견 한 마리 몫도 못한 경계 태세다.

▷우리 군부대가 동네 마실 다니듯 무방비로 뚫린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2012년 10월에는 북한군 병사가 강원 고성 지역 3중 철책을 넘어 우리 군 전방초소(GOP) 생활관 문을 두드린 일명 ‘노크 귀순’이, 지난해 6월에는 북한 주민 4명이 탄 목선이 강원 삼척항까지 아무 제지 없이 들어온 ‘해상판 노크 귀순’이 벌어졌다. 2015년 포항 해병대 1사단에서는 밤에 부대 안에 들어온 민간인 차량을 10여 분간 찾지 못해 부대가 발칵 뒤집혔다. 차는 다시 위병소에 나타났지만 신원 확인 중에 부대 밖으로 도주했고, 경찰 협조로 잡았다.

▷경계 실패가 발생할 때마다 군은 관련자 징계와 재발 방지를 천명하지만 개선은 고사하고 더 악화되는 것 같다. 지난해 7월 경기 평택 해군 2함대사령부에서는 경계 실패를 덮기 위해 부대 장교가 병사에게 허위자백을 종용했다. 군 안팎에는 ‘상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을까’, ‘나 있을 때만 터지지 않으면 되지’ 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고 한다. 잇단 경계 실패는 이런 면피와 눈치 보기에 길들여진 군 문화가 근본 원인이라는 것이다.

▷제7기동전단에 배속된 이지스함인 ‘세종대왕함’은 1000km 밖의 항공기나 미사일을 찾아낼 수 있고, 동시에 900여 개의 목표물을 추적할 수 있다. 그런 무기가 있는 곳이 고작 가정용 펜치에, 그것도 대낮에 뚫리다니 어이가 없다. 군은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방패다. 자기 집도 못 지키는 방패를 어찌 믿을까. 부대를 지키는 파출소라도 둬야 하나.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제주해군기지#민간인 시위대#제7기동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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