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과 국가의 운명[임용한의 전쟁史]〈101〉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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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 고열이 나고 눈이 빨갛게 충혈됐다. 목구멍과 혀에서 피가 나기 시작하고, 재채기가 나며 목이 쉬었다. 얼마 뒤 고통이 가슴으로 내려오며 심한 기침이 났다.” 기원전 430년∼기원전 429년 펠로폰네소스 전쟁 중 아테네에 창궐했던 전염병 증상의 기록이다. 이전까지 아테네는 승기를 잡고 있었고, 최종 승리를 위해 나가던 중이었다. 그러나 전염병이 아테네의 운명을 바꾸었다. 마침내는 위대한 지도자 페리클레스마저 전염병에 쓰러졌다.

사람들은 역사에서 운명의 장난에 흥미를 느끼는 것 같다. 아테네의 전염병도 우연이 필연을 바꾼 불운한 사건으로 곧잘 회자되곤 한다. 그러나 역사의 신은 더 짓궂다. 전염병으로 아테네가 바로 몰락하지는 않았다. 엄청난 희생을 당하고 1라운드 승리의 기회는 날렸지만, 아테네는 재기했고, 극적으로 전세를 역전시켰다. 아테네는 최소한 2번 승리의 기회가 있었다. 그 기회를 날린 원인은 지도자와 민중의 탐욕이었다. 페리클레스가 사망한 뒤로 아테네는 선동정치와 포퓰리즘의 제물이 됐다. 탐욕은 결정적 순간마다 아테네가 엉뚱한 결정을 내리게 했고, 결국 아테네의 영광은 역사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전염병의 타격이 엄청난 것은 사실이다. 투키디데스가 아쉬워한 대로 페리클레스가 희생되지 않았더라면 아테네가 승리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입장에서 보면 전염병은 결정타였다. 그러나 우연과 재난, 불운이 닥치지 않는 전쟁이 있을까. 가뭄과 태풍을 겪지 않는 농부가 있을까. 재난보다 중요한 것이 재난에 임하는 사회와 시민의식, 지도자의 역량이다. 아테네의 패전이 주는 진정한 교훈은 이것이다. 세계 경제가 코로나19로 휘청거린다. 벌써 세계인들은 코로나19로 인한 희생보다 그 후에 벌어진 경제 쇼크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경제가 취약한 국가는 걱정이 더 크고, 그런 나라의 정치인들은 벌써 코로나19에 책임을 전가하려고 꼼수를 쓰고 있다. 아테네의 운명을 정말 바이러스가 책임져야 할까.
 
임용한 역사학자
#전염병#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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