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너무 심각하게 다루는 거 아닌가요? 독감 사망률과 별 차이 없던데요.” 최근 일주일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가 급증한 프랑스 시민들에게 코로나19 대응 방식을 취재하면서 들은 이야기다.
불과 4, 5일 전까지 코로나19에 대해 물으면 “정말 그렇게 심각하냐”고 반문하는 파리 시민이 대다수였다. 이런 인식을 우려한 듯 유럽 각국 정부는 이달 초부터 사회적 거리 두기 방안을 잇달아 발표했다. 프랑스 정부는 뺨을 맞대며 인사하는 비주(bisou) 자제 권고령을 내렸다. 이탈리아는 대화 시 일정 거리를 유지하는 ‘1m 안전거리 룰’을 내놨다. 영국은 공식 행사에서 악수를 금지했다.
이에 대해 상당수 시민은 “황당한 조치”라고 했다. 파리 15구 샤를미셸역 앞에서 만난 주부 로즐린 씨는 “친구를 만나면 그냥 비주를 한다”고 말했다. 바스티유광장 일대에서 만난 이리나 씨는 ‘바이러스가 확산 중이니 비주를 하지 말자’는 친구에게 화를 내며 억지로 끌어안고 뺨을 비벼댔다. 길에서 만난 시민에게 ‘코로나19는 무증상 감염자가 있기 때문에 증상이 없어도 마스크를 착용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하면 “‘마스크를 쓸 정도면 집에 있지, 왜 밖에 나오느냐’는 게 프랑스 정서”라고 반박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지난달 말 프랑스 일간 르파리지앵 설문조사에서 프랑스인 중 귀가 후 손을 씻는 비율은 37%에 그쳤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프랑스 정부는 12일 전국 학교 휴교령, 14일 모든 상점 폐쇄, 15일 대중교통 대폭 감축 등 대책을 발표했다. 강력한 정책이 나온 뒤에야 파리 시내는 조금 한산해졌고 마스크를 쓰는 사람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주말인 14, 15일 시내 카페에는 다닥다닥 붙어 앉아 와인을 마시는 사람들로 붐볐고, 공원과 운동장에서는 농구 등 신체 접촉이 많은 스포츠를 즐기는 시민이 적지 않았다. 이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15일 “많은 프랑스인이 카페에 모여서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먹고 마신다. 바보 같은 짓”이라고 이례적으로 자국민을 비판했다. 프랑스뿐 아니다. 유럽 내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가장 많은 이탈리아는 확진자가 하루에 수백 명씩 급증하던 이달 초까지도 붐비는 술집이 많았다.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가 나서 “이탈리아 시민들이여, 건강을 지키려면 뭔가를 포기해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유럽연합(EU)은 유럽에서 빠르게 코로나19가 퍼진 원인을 분석하느라 분주하다. 높은 고령자 비율, 초기 대응 실패, 의료 시스템의 결함 등 다양한 요인이 거론되고 있다. 유럽인들의 안일한 보건의식이 코로나19 확산에 불을 붙인 제1원인일 수도 있다. 지금이라도 ‘설마’ ‘나 하나쯤이야’란 단어를 머리에서 지우는 유럽 시민이 늘어나야 코로나19에 대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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