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을 진찰하며[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132〉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18일 03시 00분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훈훈해지는 예술품이 있다. 미국의 일러스트레이터이자 화가인 노먼 록웰이 40대 후반인 1942년에 그린 ‘의사와 인형’이라는 그림이 그렇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의사가 민트색 원피스를 입은 소녀가 안고 있는 아이를 진맥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

한의원에 가면 그러하듯, 의사는 아이의 손목에 네 손가락을 짚고 시계를 바라보며 맥박을 재고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의사는 아이의 손목에 손가락을 짚고 있는 게 아니다. 아이는 의사의 손가락에 팔뚝이 가려질 정도로 몸집이 작다. 진맥을 하는 의사도, 그 모습을 걱정스레 응시하는 소녀도 아주 심각한 표정이다. 그런데 의사가 진찰하는 아이는 사실 노란 파자마를 입힌 인형이다. 어이없게도 의사는 인간이 아니라 인형을 진찰하고 있다.

화가는 이 그림의 원형이면서 더 유명한, 1929년에 그린 또 다른 ‘의사와 인형’에서는 의사가 인형의 가슴에 청진기를 대고 진찰하는 모습을 그렸는데, 이번에는 진맥을 하는 의사를 그렸다. 이전 그림에서는 인형이 인형 같았지만 이 그림에서는 인형이 사람처럼 옷을 입어 꼭 사람처럼 보인다.

이 그림은 아름다운 스토리를 펼쳐 보인다. 소녀는 왕진을 온 의사에게 자기 인형이, 아니 아기가 아픈 것 같다며 진찰해 달라고 한다. 소녀에게 인형은 인형이 아니라 부모가 자신에게 그러하듯 돌봐줘야 하는 진짜 아이다. 소녀는 심각하다. 의사는 소녀의 호소를 외면하지 않고 정성스럽게 ‘아이’를 진찰하기 시작한다. 소녀와 눈높이를 맞춘 것이다. ‘우리 아기 괜찮아요?’ 소녀의 눈길은 이렇게 묻고 있다. 의사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진맥에 열심이다. 그에게는 사실을 들이미는 것보다 소녀의 마음이 훨씬 더 중요하다. 그는 인형이 아니라 소녀의 마음을 진단하는 중이다.

소녀는 언젠가 어른이 되어 이때를 회상하며 그 너그러움에 가슴이 뭉클할지 모른다. 때로는 그러한 너그러움을 비추는 것이 예술이다. 록웰의 그림이 그러하듯.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
#의사와 인형#노먼 록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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