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대한 통찰이 없으면 풍자는 불가하다. 18세기 스페인 미술의 거장 프란시스코 고야는 궁정화가임에도 불구하고 예술을 통해 지배계급을 신랄하게 풍자했다. 1797∼1798년 그는 ‘변덕’이란 제목을 단 80장의 동판화 연작을 제작한 후 이듬해 책처럼 묶어 300세트를 만들었다. 그러곤 미술품 중개상이 아닌 동네 약국에서 팔았다. 도대체 어떤 작품이기에 약국에서 팔았던 걸까? 작품은 잘 팔렸을까?
80장의 판화는 지배계급의 무능과 무지, 교회와 권력자의 부패, 정략결혼, 거지와 매춘부, 미신 신봉, 서민의 몰락 등 당시 스페인 사회를 비판하는 이미지로 가득했다. 이 그림은 23번 판화로 부당한 종교재판의 한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두 손이 묶인 채 긴 고깔모자를 쓴 죄수는 페리코라는 이름의 장애인 여성으로, 사랑의 묘약을 판매한 혐의로 체포됐다. 이미 엄청난 비난을 받았는지 그녀는 관리 무리들 앞에 앉아 고개를 숙인 채 재판장이 읊어대는 판결문을 듣고 있다. ‘먼지 한 줌’이라는 제목처럼 그녀는 먼지 한 줌도 안 되는 죄로 목숨을 잃을 처지다. 고야는 “잘못된 일! 명예로운 여자, 모든 사람을 잘 섬긴 여자를 이런 식으로 대하다니!”라고 분노하며 이 장면을 판화로 새겼다.
이런 날 선 풍자화를 동네 약국에서 판매한다는 것 자체가 큰 모험이었다. 지역신문에 판매 광고를 내자마자 판화집은 순식간에 27세트나 팔려 나갔다. 약국은 작품에 대한 반응을 즉각 확인할 수 있는 최고의 판매처였다. 하지만 당시 스페인은 고압적인 교회와 무자비한 전제 군주로 악명 높던 시기였다. 화가와 작품은 무사했을까? 고야는 카를로스 4세 국왕의 총애를 받는 궁정화가였지만 이 일로 종교재판에 회부돼 처형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꼈다. 해서 열흘 만에 스스로 판매를 중단했다. 1803년에는 확실한 신변 보호를 요청하며 동판과 팔고 남은 원판화 전부를 국왕에게 넘겼다. 더 큰 예술을 지속하기 위한 현실적 타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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