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한 외국인 친구가 서울에서 임종했다. 옛 동료에게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매우 슬펐다. 사람이 타향에서 세상을 떠나면, 게다가 가족도 곁에 있어 주지 못한 채였다면 비극이다. 심지어 그가 유언도 남기지 않고 유가족이 한국에서 아무 도움 없이 고인의 신변을 정리하고 시신을 인수받으면 더 비극이다. 이번 블로그는 그가 어떻게 생애를 마감했는지 쓰려는 것이 아니라 유가족, 친구들이 밟아야 하는 절차를 쓰려 한다.
다행히도 고인의 외국인 친구 D 씨가 유가족의 연락처를 가지고 있어 그들에게 연락했다. 며칠 후 유가족들이 한국에 왔다. 처음 직면한 문제는 어떻게 고인의 유가족임을 증명할 것인가였다. 한국 국민이라면 주민센터에서 가족관계증명서를 뽑을 수 있다. 반면 외국인은 쉽지 않다. 여권에는 가족 정보가 없고 외국 출생증명서는 한국에서 통하지 않는다. 모든 외국 서류는 본국 정부에서 공증과 같은 ‘아포스티유’를 받고 한국에 와서 한국어로 번역하고 공증을 받아야 유효하다.
그래서 유가족이 한국에 와서 거의 제일 먼저 들른 곳이 자국 대사관이었다. 대사관은 할 일이 워낙 많은 데다, 요즘 많은 국가들이 해외 대사관 예산을 줄여 인원도 부족하다고 한다. 운이 좋아야 유가족이 담당자를 잠깐 만날 수 있다. 운이 더더욱 좋다면 대사관에서 한국어로 쓰인, ‘이 사람이 고인의 유가족이다. 대사관 부탁인데 이 사람을 도와달라’는 내용의 편지나 증명서를 받을 수 있다. 사실은 거의 대부분의 대사관은 직접 지원해줄 수 있는 것이 그런 편지 정도에 불과하다. 나는 D 씨와 함께 여러 가지 할 일을 나눠 유가족을 모시고 행정절차를 풀기 위해 돌아다녔다. D 씨는 대사관, 경찰청, 시신이 안치된 병원에 가서 서류들을 작성하는 데 필요한 통역을 해주고, 한국인 담당자를 만나 상황을 설명했다. 나는 아내와 함께 공인중개사무소에 가서 임대차 계약을 취소하고 고인이 살았던 아파트를 청소하고 유품을 정리해주는 회사를 찾아 서비스를 신청하고, 휴대전화 사용을 정지시키고, 신용카드를 해지하고 은행에서 통장 계좌에 남은 잔액을 어떻게 유족에게 돌려줄 수 있는지 확인하는 등 다른 일을 해야 했다. 한편 고인의 또 다른 외국인 친구 H 씨는 유가족과 친구, 동료들을 만나 고인의 한국에서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추모의 자리를 마련했다. 정식 장례식은 꿈도 못 꾸는 상황이었다.
우리 셋의 도움으로 유가족이 간신히 6일 걸려 일을 대략 마무리하고, 주어진 시간 내에 고인의 유골 항아리를 들고 다시 고향으로 갈 수 있었다. 만약 화장을 선택하지 않고 시신을 관으로 옮기고자 했다면 절차가 더 복잡해지고 비용 또한 급증했을 것이다. 이번 경우에 큰 문제없이 고인의 유골함을 본국으로 모시게 된 것은 여러 한국 사람들의 적극적인 도움, 외국인 친구들의 지원과 그들의 한국어 능력 덕분이었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운이 따랐던 것 같다. 혹시 주변에 한국에 혼자 사는 외국인을 알고 있다면(세입자, 친구, 동료 또는 직원일 수 있다) 최소한 만약을 위해서 고향의 가족 명단과 연락처를 공유하는 게 좋지 않을까. 또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들의 신변 문제를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 적어 한국의 믿음직한 친구 두어 명에게 맡기면 어떨까라고 말해줄 필요도 있다. 대부분은 절대 쓸 일이 없겠지만 그래도 하는 것이 좋다. 만약을 위해서다.
한국 정부, 서울시, 지방자치단체들이 그동안 외국인의 한국 정착을 위해 수많은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했다는 것을 잘 안다. 덧붙여 한국에서 혼자 사망하는 외국인과 그 유가족을 위해 관련 행정절차를 보다 순조롭게 처리할 수 있도록 대사관과 긴밀하게 협력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면 좋겠다. 고인의 신변 처리를 위해서 많은 위로와 협조를 해주신 경찰서, 병원, 공인중개사무소, 은행, 통신회사, 고인의 전 직장 한국인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한국인의 특별한 정과 남을 돕는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