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균 칼럼]꼼수가 꼼수를 낳는 변종 코로나 정치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23일 03시 00분


공천 亂場, 정치 이렇게 거꾸로 가나
꼼수 선거법→꼼수 비례당→꼼수 공천… 코로나 변종이 변종을 낳는 듯
막장 압권, 사실상 ‘비례민주당’ 창당… 한국정치 黑歷史에 남을 만한 일

박제균 논설주간
박제균 논설주간
서울의 한 지역구. 4·15총선에서 대학 선후배끼리 6번째 대결을 벌여 화제다. 2000년 16대 총선부터 이번 21대까지 단 한 번도 대결상대가 바뀌지 않았다. 이건 미담(美談)인가.

아니라고 본다. 마흔 살 전후의 젊은이들이 예순 전후가 되도록 같은 지역구 국회의원 자리를 나눠서 차지하는 게 한국정치의 정체(停滯)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한 분은 3선 의원이고 다른 분은 재선 의원 출신이니, 이번 총선 결과에 따라 4선, 혹은 3선 의원이 될 것이다. 두 사람 다 같은 대학 총학생회장 출신. 정치 외에 이렇다 할 직업을 가져본 일이 없다. 여기서 드는 의문. 정치인은 직업인가.

물론 선진국에도 지역구에서 장수하는 정치인들이 있고, 심지어 세습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다선 의원을 평가하는 기준은 자명하다. 그가 지역구를 위해, 아니 국가를 위해 어떤 기여를 했느냐다. 하여,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온 이때, 금배지를 향해 뛰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은 근본적인 질문이 이것이다. 당신은 말로는 ‘공익’을 외치면서 정치를 내가 반드시 해야 하는 직업으로 착각하는 것은 아닌가.

제1 야당의 대선후보를 지낸 분을 비롯해 공천에서 떨어지자 “살아서 돌아오겠다”며 무소속 출마를 준비 중인 사람들에게 묻고 싶은 질문도 같다. 왜 굳이 살아서 돌아오려 하는가. 정치를 자신이 꼭 해야 하는 직업으로 착각하는 건 집권세력이 5년도 못 갈 권력을 영원할 거라고 착각하는 것만큼 우매하다.

시대는 변화를 원한다. 낡은 정치, 그 나물에 그 밥 같은 정치인에 지쳤다. 그럼에도 미래통합당은 80세의 김종인 전 의원을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초빙하려 했다. 김 전 의원이 자타가 공인하는 ‘선거 기술자’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 비례대표 5선이라는 전무후무의 기록을 가진 김 전 의원이 통합당 선대위원장이 됐다면 좌우파의 강을 4번이나 넘는 셈이었다. 그가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의 서울 강남갑 공천을 두고 ‘국가적 망신’이라고 폄훼하는 걸 보고 시대 변화에 대한 ‘감’이 떨어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참을 만하다. 한국 정치의 정체 현상이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고, 도덕의 잣대까지 들이밀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야에서 벌어지는 공천 난장(亂場)을 보니 어떻게 한국 정치는 이다지도 거꾸로 갈 수 있나, 하는 허탈감마저 든다. 꼼수 선거법이 꼼수 비례정당을 낳고, 꼼수 비례정당이 꼼수 공천을 낳는 것이 마치 코로나 바이러스의 변종이 변종을 낳는 듯하다.

미래통합당이 과감하게 TK(대구경북) 의원들을 비롯해 기득권 현직을 쳐낼 때는 혁신의 바람이 불 줄 알았다. 그런데 쳐낸 그 자리에 채워 넣은 사람들이 기대 이하인 경우가 많다. 오죽하면 시대 변화에 둔감한 통합당 공천관리위원회가 “공천이 아니라 인사를 했다”는 말이 나오겠는가.

미래한국당이라는 비례전용 위성정당의 모습은 더 가관이다. 통합당 입장에선 이름만 빌려 차명계좌를 열었더니, 이름 빌려준 이가 ‘계좌의 돈은 내 것’이라고 나선 꼴이었다. 차명계좌를 여는 것 자체가 비난 받아 마땅하지만, 남의 돈을 내 돈이라고 우기는 건 더 뻔뻔한 일이었다.

그래도 야당 쪽은 여당에 비하면 양반이다. 총선 막장 드라마의 압권은 뭐니 뭐니 해도 민주당의 비례위성정당 쪽이다. 미래한국당을 ‘쓰레기 정당’이라고 욕하며 비례정당 근처에도 안 갈 것 같던 민주당이 진보세력 비례연합정당을 만든다고 물타기를 하더니, 급기야 이름도 생소한 군소당들을 긁어모아 사실상의 ‘비례민주당’을 만들고 말았다. 한국 정치의 흑역사(黑歷史)에 남을 만한 일이다.

더구나 여당 쪽에는 대놓고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칭송하는 ‘친문·친조국 비례정당2’까지 있다. 애당초 ‘4+1 연합’이라는 희한한 야합으로 선거법을 일방처리한 결과가 기형 비례전용 정당의 난립으로까지 이어졌다. 게다가 비례대표 후보를 못 내는 당은 정당 홍보를 위한 TV 토론도 할 수 없어 원내 1, 2당의 TV 토론도 없는 기형 선거운동이 벌어질 판이다. 가뜩이나 코로나 사태로 심란한데, 한국 정치가 아무리 망가졌어도 이건 너무 창피하지 않은가.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공천 난장#꼼수 선거법#비례정당#비례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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