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7일 한진그룹의 지주사인 한진칼 정기 주주총회에서는 그룹의 운명이 걸린 한판 승부가 펼쳐진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한진칼 사내이사 연임 안건이 처리되기 때문이다. 주총 결과에 따라 조 회장이 그룹 내 경영권을 지키느냐, 아니면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KCGI, 반도건설의 반(反)조원태 3자 연합이 조 회장을 끌어내리느냐가 결정된다. 오너 가족이 가세한 최대 주주의 반란으로 그룹 총수의 리더십이 교체되는 전례 없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번 주총에서 의결권을 가진 주식 기준으로 조 회장 측 우호지분은 37.14%, 3자 연합은 31.98%로 5.16%포인트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더욱이 양측 지분 일부의 의결권을 제한해 달라는 소송 2건이 진행 중이다. 소송 결과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수도 있다. 여기에 2.9%의 지분을 가진 국민연금이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도대체 어쩌다 한진그룹은 이런 상황까지 온 걸까. 그리고 앞으로 한진그룹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며칠 남지 않은 주총의 주요 관전 포인트를 짚어봤다.
○ 임원 인사에 무너진 남매의 우애
조 전 부사장과 조 회장이 갈라서게 된 건 지난해 12월 2일부로 단행된 대한항공 정기 임원 인사가 결정적이었다. 지난해 4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사후, 가족들 사이에 경영권 배분을 둘러싼 이견이 조금씩 흘러나왔다. 조 전 부사장은 호텔과 기내식, 면세 사업 등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조 회장은 대한항공의 각종 사업을 분리할 수는 없다며 이를 거부했다. 그 대신 그룹 내 물류회사인 ㈜한진을 떼어내 조 전 부사장 또는 조현민 한진칼 전무에게 맡기고 싶어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조 회장은 지난해 11월 20일 미국에서 기자들과 만나 “내가 (그룹을) 독식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지분을 나눈 것도 형제들끼리도 같이 잘 지내자는 뜻”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의견 차이는 있을지언정 서로 등을 돌릴 정도는 아니었다.
상황이 급변한 건 조 회장이 미국에서 돌아온 이후부터다. 재계에 따르면 조 회장은 지난해 11월 델타항공처럼 백기사 역할을 해줄 우군을 찾던 중이었다. 실제 이 무렵 조 회장은 한진칼 지분 10% 이상을 매입해줄 수 있는 유력한 파트너를 찾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 회장이 그룹 경영에 자신감을 갖고 밀어붙인 것도 이 때문이었다. 내부 사정에 밝은 한진그룹 관계자는 “결과적으로는 델타항공에 이은 제2의 백기사를 찾는 데는 실패했지만 당시 지분 경쟁에서 우위에 섰다고 판단한 조 회장이 11월 29일 대한항공 정기 임원 인사 때 조 회장 사람들로 주요 임원을 꾸렸다”며 “인사 결과를 보고 단단히 화가 난 조 전 부사장이 등을 돌린 결정타였다”고 설명했다. 3자 연합 측 관계자도 “정기 인사 이후에 조 전 부사장 측에서 접촉을 해왔다. 반도건설도 처음엔 한진의 백기사였지만 조 회장이 그룹을 장악하면서 입지가 좁아졌고 KCGI와 만나게 됐다”고 말했다.
○ 양측의 잇단 소송전…국민연금의 선택은?
3자 연합이 결성되면서 한진그룹의 경영권은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그동안 조 회장과 조 전 부사장 사이를 중재하려 했던 동생과 어머니가 조 회장을 지지하겠다고 밝히면서 대립 구도가 형성됐다. 1%의 지분이라도 더 얻으려는 양측의 싸움이 시작됐다. 소액주주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의결권 위임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최근 양측은 상대방의 일부 지분에 문제가 있다며 의결권을 제한해 달라는 소송까지 벌이고 있다.
3자 연합은 12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대한항공 자가보험과 사우회가 보유한 한진칼 주식 3.7%에 대해 주총에서 의결권 행사를 금지해 달라”며 가처분신청을 했다. 3자 연합은 “자가보험과 사우회가 한진칼 지분을 살 때 직원 동의를 구하지 않았고, 회장이 임명한 임원들이 결재를 한 뒤 지분을 매입했다”며 “그룹 총수의 영향력 안에 있는 지분이므로 특수관계인에 해당하지만 이를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고, 이는 자본시장법 위반이므로 의결권 행사가 금지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질세라 조 회장 측은 반도건설 지분에 문제가 있다며 17일 금융감독원에 조사를 요청했다. 문제가 된 지분은 반도건설의 지분 8.2% 가운데 3.2%다. 반도건설이 경영 참여 목적으로 지분을 매입했으면서도 ‘단순 투자’라고 허위 공시를 했기 때문에 3.2%에 대한 의결권 행사를 못 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3자 연합은 반대로 이 지분의 의결권 행사를 가능하게 해 달라는 가처분신청을 3일 법원에 냈다. 가처분 결과는 25일쯤 나올 것으로 보인다. 법원이 어떤 결과를 내느냐에 따라 양측 지분의 격차가 줄어들 수도, 늘어날 수도 있다.
또한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연금의 선택도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국민연금은 그동안 위탁 운용사를 통해 한진칼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해 왔다. 그러나 이번 주총에서는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가 직접 의결권을 행사하기로 했다. 국민연금은 의안 분석 등을 거쳐 주총 안건에 대한 의결권 행사 방향을 정하게 된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국민연금의 이익과 주주 가치에 중점을 두고 양측이 내세우는 명분의 합리성 등을 고려해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의결권 자문사들 중 한국기업지배구조원과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인 ISS는 조 회장 재선임에 찬성했고, 서스틴베스트와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는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에 반대한 상태다. ○ “주총으로 끝나지 않는다”…장기전 대비하는 양측
3자 연합은 5년 계약으로 묶여 있다. 어느 한쪽이라도 계약을 깰 경우 상당한 액수를 물어내야 한다. 최소 5년 동안은 한 몸처럼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 업계에서는 3자 연합이 지분 50%를 넘길 수 있다고 본다. 3자 연합이 깨지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지분 50%를 넘긴다는 건 사실상 3자 연합이 한진칼을 지배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어느 한쪽이 욕심을 내면 연합이 깨질 수도 있다고 본다. 한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영원한 선의의 백기사는 없다”며 “거액을 투자해 지분을 확보했는데도 적절한 보상이 없다면 3자 연합의 연대가 깨질 수도 있다”고 예측했다.
조 회장 측도 장기전에 대비하고 있다. 조 회장 역시 지난해 11월 “(경영권 분쟁은) 장기적으로 생각해야 할 것 같다”고 밝히기도 했다. 델타항공이 올해 2월 20일 “상법 제369조(의결권)에 따른 권한을 행사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히며 지분을 14.9%까지 늘린 것도 조 회장과의 협의가 있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그러나 항공업계 일각에서는 해외 항공사인 델타항공이 캐스팅보트를 쥐게 된 점을 우려스럽게 바라보기도 한다. 델타항공의 지분 확보가 국내 항공법에 저촉되진 않지만 델타항공 지분이 조 회장의 경영권 방어에 결정적인 만큼 대한항공이 델타와의 각종 사업 협상에서 불리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국내 한 항공사의 전직 고위 임원은 “항공 동맹 내부에서는 환승 고객이 낸 돈을 어느 항공사가 1달러라도 더 가져가느냐 하는 ‘한 끗 싸움’이 치열하다”며 “지금 상황에서 대한항공이 델타항공에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에드 배스천 델타항공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파트너의 운송업체를 직접 소유할 수 없기 때문에 상업적인 계약을 넘어서 영향을 미칠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며 “다른 항공사에 대한 투자를 통해 이사회에도 참여하고, 전략을 짜는 데 유리하다는 걸 알아냈다”고 말하기도 했다.
○ 경영권 분쟁에 멍드는 그룹…재계 “대승적 결단을”
이번 주총에서 한진칼은 사내이사 후보로 조 회장과 하은용 대한항공 부사장을 올렸다. 3자 연합은 사내이사 후보로 김신배 전 SK그룹 부회장과 배경태 전 삼성전자 부사장, 비상무이사 후보로 함철호 전 티웨이항공 대표를 올렸다. 이번 주총에서는 이사 후보 모두 표결에 부치기 때문에 투표 결과에 따라 다양한 사내이사 조합이 가능해진다. 지분이 팽팽히 갈리는 만큼 적과 아군이 공존하는 이사회가 될 가능성이 점쳐지기도 한다. 한 재계 관계자는 “양측이 추천한 사내외 이사들이 섞이는 이사회가 꾸려지면 이사회 안건마다 치열한 토론을 벌이는 진풍경이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3자 연합은 이번 주총에서 자신들이 추천한 7명의 사내외 이사 후보들 중 한두 명만이라도 이사회에 들어간다면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고 보고 있다. 한편 한진칼 측은 3자 연합이 추천한 사내외 이사 후보들이 항공업계 전문성이 떨어진다며 모두 반대하고 있다. 한 대기업 임원은 “주총 이후에도 3자 연합의 공세를 조 회장이 계속 방어해 가는 상황이 이어질 것”이라며 “그룹이 경영권 분쟁으로 멍이 들까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대기업 임원도 “양측이 계속 서로를 헐뜯고 다투면 피해자는 결국 그룹과 직원들이다. 양측의 대승적인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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