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수의 주역이 된 전직 청와대 참모들[청와대 풍향계/한상준]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24일 03시 00분


22일 국회에서 진행된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후보 기자회견을 마친 뒤 최강욱 전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뒷줄 왼쪽에서 두 번째)과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뒷줄 왼쪽에서 세 번째) 등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22일 국회에서 진행된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후보 기자회견을 마친 뒤 최강욱 전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뒷줄 왼쪽에서 두 번째)과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뒷줄 왼쪽에서 세 번째) 등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한상준 정치부 기자
한상준 정치부 기자
“방법이 왜 없나? ‘문재인 대통령을 지키겠다’며 비례용 정당을 만들면 되는 거지.”

지난달 초 청와대 참모 A는 농담처럼 이렇게 말했다. 그때는 아무도 몰랐다. 이 말이 진짜 현실이 될 거라고는.

4·15총선에서 지역구 출마를 위한 공직자 사퇴 시한인 1월 16일이 임박해 비로소 청와대 내부의 출마자 교통정리가 끝났다. 아니, 대다수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당에서 숱한 선거를 치러본 A는 “물리적으로 (청와대 출신 인사의) 출마가 완전히 끝난 건 아니다”고 했다. 비례대표가 남았다는 것. 공직자가 지역구에 출마하려면 선거 90일 전까지, 비례대표에 출마하려면 선거 30일 전까지 사퇴하면 된다. 그는 친문(친문재인) 비례정당 창당 가능성을 언급하면서도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참모들 중에 누가 비례로 출마하겠느냐”고 했다.

약 한 달이 지난 지금, A의 농담은 적중했다. 의석수 129석의 원내 제1당인 집권 여당은 여전히 건재하고, 숱한 논란 끝에 더불어시민당이라는 비례대표용 위성정당까지 만들었다. 그런데도 이에 더해 비례대표용 친문 정당인 열린민주당이 탄생했다.

이 친문 정당에 최강욱 전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이 황급히 사표를 내고 합류했다. 열린민주당 남자 비례대표 후보 9명 중 청와대 출신은 최 전 비서관과 김의겸 전 대변인까지 2명이다.

총선 출마의 진짜 막차를 탄 최 전 비서관이 사표를 낸 16일은 비례대표 출마를 위한 공직자 사퇴 시한 마감일이었다. 당연히 비례대표 출마를 위해 사표를 던졌다는 해석이 나왔다. 하지만 최 전 비서관은 청와대 관계자에게 “명확하게 (아니라고) 끊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청와대가 “최 전 비서관은 출마가 아니라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재판 준비 때문에 사표를 낸 것”이라고 설명한 이유다. 물론 채 일주일도 안 돼 거짓말로 밝혀졌지만.

또 최 전 비서관과 김 전 대변인 모두 열린민주당에 합류하며 “대통령을 지키겠다”고 외쳤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에 모든 것을 던지겠다는 그 충절이 진심이라면, 남아 있는 청와대 인사들이 뜨거운 박수로 응원을 보내야 할 터인데 실제 반응은 다르다.

대선 캠프 출신의 한 참모는 최 전 비서관에 대해 “차라리 솔직하게 (국회의원) 배지가 달고 싶다고 했으면 그나마 이해를 했을 것”이라고 했다. 전북 군산 출마를 선언했다가 불출마로 선회한 뒤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해 열린민주당에 합류한 김 전 대변인에 대해서는 “어쩌다 저렇게까지…”라는 반응이다.

청와대는 공식적으로는 열린민주당에 대해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선거에 관여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는 이유다.

열린민주당은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들고 있다. 한 여당 의원은 “전직 청와대 참모들을 앞세워 청와대의 어쩔 수 없는 침묵을 마치 열린민주당에 대한 암묵적 지지로 해석하고 퍼뜨리고 있다”고 했다.

여기에 열린민주당은 두 사람을 간판으로 “민주당과 우리는 형제”라고 주장하고, 민주당은 이런 열린민주당을 어찌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다. 자연히 야당은 “미리 다 조율해 놓고 청와대와 민주당, 열린민주당이 벌이는 ‘짜고 치는 고스톱’ 아니냐”고 의심한다. 시작부터 잘못 끼워진 공직선거법 개정과, 의석수에 눈이 멀어 그 맹점을 뻔뻔하게 파고든 정당들에 더해 두 전직 청와대 참모까지 가세하면서 유권자들의 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문 대통령은 대선 전부터 “정치 현실을 바꾸려면 정당의 무원칙을 바꿔야 한다. 원칙에 대해서는 타협 없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최 전 비서관과 김 전 대변인은 일말의 부끄러움도 없이 꼼수의 주역을 자처했다.

전현직 참모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원칙주의자 문재인’ 곁에서 대체 무엇을 보고 배운 것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두 사람은 과연 문 대통령을 지키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이용하고 있는 것인가.
 
한상준 정치부 기자 alwaysj@donga.com
#4·15총선#열린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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