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를 생각하면 중종 때 개혁을 추진하다 모함을 당해 기묘사화 피해자가 된 조광조 선생이 떠오르고…”. 정봉주·손혜원이 만든 열린민주당의 황희석 전 법무부 인권국장이 최근 올린 글이다. 가족 비리와 얽혀 법무부 장관직에서 낙마한 조국이 검찰개혁을 추진하다 모함당한 피해자로 뵈는 모양이다.
집권여당은 조국 수호 집회를 주도한 ‘개싸움국민운동본부’(참 이름도 살벌하게 붙였다)가 주축인 당과 비례정당까지 만들었다. 열린민주당과 연합도 거론했다. 이번 총선을 ‘조국에 대한 복수의 장’으로 만들 작정인 듯하다.
● 성리학 이념에 철저했던 조광조
사상과 표현과 착각은 자유다. 조국이 앞장선 이른바 검찰개혁을 개악으로 치는 쪽에선 왜 조국을 조광조에 비교하느냐며 황당해한다.
조광조(1482~1519)가 우리 역사에서 개혁의 화신처럼 각인된 것도 사실이다. TV 드라마에도 그렇게 묘사됐다. 국사편찬위원회가 만든 ‘우리역사넷-한국사연대기’ 역시 조광조에 대해 “개혁 정책을 주도했지만 국왕과 공신 세력의 반발을 사게 됐다”고 나와 있다.
하지만 조광조가 했다는 개혁이 과연 개혁인지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의 개혁정치로 꼽히는 것이 현량과다. 과거제가 공정하지 못하니 추천을 통해 학문과 덕이 높은 대현인(大賢人)을 얻어야 한다는 명분으로 1519년 4월 시행됐다.
● 자파세력 확대가 무슨 개혁인가
장원급제는 조광조와 가장 친한 김식에게 돌아갔다. 조광조가 관직에 들어서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해준 안당의 세 아들도 한꺼번에 급제했다. 결국 조광조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대거 등용되면서 현량과는 조광조 세력의 확대로 이용된 거다.
역사학자 임용한은 ‘시대의 개혁가들’에서 “그러나 조광조파는 만족할 수 없었다”고 썼다. 현량과를 시행했지만 급제자 수로 보면 천거된 120명 중 28명만 통과했을 뿐이다. “그것이 억울했는지 그해가 가기 전에 조광조파는 승부수를 던졌다. 정국공신의 위훈삭제를 요구한 것이다.”
기묘년 11월 11일 중종은 반정공신 117명 중 76명의 작위 삭탈을 결정했다. 그러자 다음 날 조광조파의 대간들은 하사품까지 환수해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다. 환수된 집과 재물이 누구에게 돌아갈지는 자명하다. 정의롭고 양심적인 조광조 무리 말고 누가 있겠나. 15일 중종은 조광조파의 체포를 지시했다. 그것이 기묘사화다.
● 내로남불의 심성은 조국-조광조 닮은꼴
실록에는 조광조가 “서로 붕당을 맺고서 저희에게 붙는 자는 천거하고 저희와 뜻이 다른 자는 배척하여, 세력을 만들어 서로 의지하여 권력이 있는 요직을 차지하고, 위를 속이고 사사로운 감정을 행사하되 꺼리지 않았다”는 기록이 나온다. 사림 패권주의다.
조광조가 모함을 당해 죽었다고? 조광조 사형을 강력히 주장한 사람은 중신들 아닌 중종이었다. “조광조는 내 곁에 오래 있어서 내가 잘 안다. 그자는 심성이 바르지 못한 인간이다. 죽어도 아까울 것이 없다.”
도학(道學)정치를 강조한 조광조에 대해 중종은 ‘심성이 바르지 못한 인간’이라고 했다. ‘자기와 뜻을 같이하면 선인(善人)이라고 하고, 뜻을 같이하지 않으면 악인(惡人)이라는’ 내로남불의 심성을 꿰뚫어본 것이다. 자기네 진영은 무조건 옳고, 나머지는 무조건 적폐라고 믿는다는 점에서 조광조는 조국과 꼭 같은 인간형이다.
● 졸렬한 이상주의가 조선을 망쳤다
이런 조광조가 존경받는 인물이 된 이유를 임용한은 “구체적인 정책을 제시하거나 집행한 사례가 없고 원론적인 주장만 한 덕분”이라고 했다. 정치를 도덕과 일치시켜야 한다는 도덕적 근본주의에 누가 감히 반대하겠나. 정치를 부도덕하게 할 참이냐고, 당장 비난받을 터인데.
잠시 숨죽었던 사림은 이후 조선의 정치를 주도하면서 조광조를 부활시켰다. 당대엔 현실정치의 벽을 넘지 못했지만 사후에 정치적으로 복권됨으로써 조광조의 도덕적 근본주의는 한국 정치사상의 전형으로 확립이 됐다.
그래서 조선은 좋았는가. 루터의 종교개혁(1517년) 마젤란의 세계일주(1519년)가 일어나던 시기, 조광조는 소학과 열녀전만 보급하면 나라가 평안해진다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 그럼에도 그를 ‘영원한 개혁의 순교자’로 볼 건지, ‘졸렬하리만큼 급진적인 도학적 이상주의자’로 볼 건지는 각자의 자유다.
● 조국은 文의 본심… 차기 후보는 살아있다
조광조의 후예는 위정척사파로, 반미자주파 아니면 주사파로, 심지어 중국사대주의파와 검찰개혁파로 환생을 거듭하고 있다. 도학정치를 주장하며 내로남불을 일삼았던 조광조를 떠올리면, 검찰을 대통령에게 종속시키는 것이 검찰개혁이라고 주장하며 내로남불을 일삼는 조국은 닮은꼴 맞다.
조광조는 개혁정치가 아니었고, 조국 역시 검찰개혁이라 할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놓고 말 못 하는 본심을 대리 노출해준 것이 조국이라면, 점잖은 분장을 벗기고 본색을 드러낸 것이 열린민주당 같다. 결국 4·15총선은 조국 총선이고, 문재인 총선이다.
이번 총선에서 열린민주당-더불어민주당-더불어시민당이 승리하면 조국은 대선 후보로 화려하게 등장할 수도 있다. 이 환생의 고리를 끊을 것인지, 시대착오적 남조선의 신민(臣民)으로 계속 살아갈 것인지 이번 총선에 걸렸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알려왔습니다] 3월 24일 자 “[김순덕의 도발] 조국·조광조가 개혁을 했다고?” 칼럼에 관하여, 한양조씨 대종회는, 아래와 같이,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 1482∼1519)는 기묘사화의 희생 제물로 역사에서 사라진 인물이며, 그 후 조선의 동방 5현(賢)으로 성균관 문묘와 전국 향교에 배향되어 유림들의 추앙을 받았고, 그의 개혁 사상과 행동은 본(本)을 받아야 마땅한 인물이다. 특히, 한양조씨 가문에서는 자랑스런 한양조씨 인물로 가정(家庭)에서 훈육(訓育)하고 있다.
정암은 종2품의 대사헌으로 발탁이 되어 조선 제도권 언론이 수장이 되었는데 사헌부는 현대 언론기관, 검찰청 등의 기능을 했고, 국가 업무를 집행하거나 인사정책을 총괄하는 실무부서가 아니었으며, 반정으로 나라가 혼란스러울 때 중종이 정암이 원하지 않았음에도 구원 투수로 제도권 언론의 수장으로 정암을 등장시킨 것이다.
정암은 언로(言路)를 개방하여 흩어진 민심을 수습하고, 제도권 언론의 수장으로서 조정과 백성의 실사구시(實事求是) 삶의 방향을 제시한 공이 있으므로 정암에 대한 폄하는 있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따라서 학계 등에서 조광조의 개혁을 자파(自派)세력이나 확대하는 졸렬(拙劣)한 이상주의자로 빗대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판단하며, 더더욱 조국 전 법무장관과 연관 지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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