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 지원엔 응답 않고 마스크 벗어던진 김정은[광화문에서/황인찬]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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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찬 정치부 차장
황인찬 정치부 차장
“마스크를 쓰고 할까요? 벗을까요?”

지난주 인터뷰를 위해 만난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대사는 자리에 앉자마자 이런 말부터 꺼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우려가 큰 만큼 마스크 착용 여부가 언론을 통해 어떻게 인식될지 신경을 쓰는 듯했다. 그는 “악수를 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싱 대사는 마스크를 벗은 채, 취재진과 대사관 직원들은 마스크를 쓴 채 대화가 오갔다. 조심스러웠던 그는 북한 방역 지원에 대해선 비교적 명쾌히 말했다. “북한은 (코로나19) 확진자가 없다고 얘기하고 있다. 없다고 하는데 (중국이) 지원하는 게 좀 그렇다”고 했다. “환자가 없다”고 하는데 지원 얘기를 꺼낼 수가 있겠냐는 말이다. 다만 북한 입장이 변할 경우 지원 가능성을 열어 놨다.

미국은 코로나19 대북 지원 가능성을 공식화했다. 다만 중국과는 접근법에 차이가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2일 “매우 심각한 시기”라며 “북한이 무언가를 겪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했다. 앞서 13일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이 “(북한에) 발병 사례가 있다고 꽤 확신한다”고 한 데 이어 발병 가능성에 무게를 두며 지원 의사를 밝힌 것이다. 한 대북 소식통은 “미국은 북한 주요 기관을 감청하고 있다. 북한 내 확진 가능성을 내비치는 것은 그런 분석 결과로 보인다”고 했다.

북한은 1월 28일 국가비상방역체계를 선포하며 코로나19 비상 대응에 들어갔다. 그러나 두 달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확진자가 1명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되풀이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확진자 발생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8만 명이 넘는 최대 확진자가 나온 중국과 국경을 맞대며, 총 무역의 95% 이상을 중국에 의존하는 곳이 북한이다. 중국과 멀리 떨어진 남태평양 섬나라까지 총 200개국에서 확진자가 나온 상황에서 북한만 무탈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문제는 북한 내부적으로 방역 협력에 나서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진단 키트가 북한에 반입돼 확진자가 나오면 ‘코로나 청정구역’이라 했던 그간 북한의 선전선동에 금이 간다. ‘무(無)오류’를 앞세우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영도력’에도 타격이 간다. 게다가 방역 협력을 통해 열악한 의료 현실, 더 나아가 영양실조로 면역력이 약화된 북한 주민의 민낯이 드러날 수 있다.

이런 까닭에 북한은 2003년 사스, 2013년 메르스, 2014년 에볼라 전염병이 세계적으로 유행했을 때도 감염병 상황을 공개하지 않았다. 셀프 봉쇄와 내부 선동에 치중하며 유행병이 가라앉기만 기다렸던 것이다. 그러나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 때는 한국으로부터 치료제 50만 명분을 받아간 적도 있다.

북한이 코로나19와 관련해 외부에 도움을 요청할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그러나 코로나19의 확산세가 만만치 않다. 공중보건 위기를 넘어 글로벌 경제 파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충격엔 북한도 예외일 리가 없다. 그렇지만 북한 지도부들은 각종 공개 행사에서 마스크를 벗어던진 채 “공화국은 안전하다”는 선전에 집중하고 있다. 세계 각국이 코로나19 피해를 줄이기 위해 협력과 연대를 강조하는 상황에서 북한만 더욱 외딴섬이 되는 것 같다.
 
황인찬 정치부 차장 hic@donga.com
#북한#국가비상방역체계#코로나19#선전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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