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비용’ 방위비 협상 막판 변수로… 한국인 5800명 무급휴직 위기[인사이드&인사이트]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27일 03시 00분


난항 겪는 한미 방위비 협상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경북 성주에 배치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비용 문제가 제11차 한미 방위비분담금 특별협정(SMA) 협상 막판에 첨예한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한미 당국은 사드 비용이 SMA 협상에서 논의된 바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안보 무임승차’ 사례로 사드 비용을 콕 집어 한국이 부담하라고 거듭 요구한 점에서 미국이 방위비분담금에 사드 비용을 전가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아울러 한미가 ‘방위비 간극’을 줄이지 못한 채 협상이 파행되면서 4월 1일로 예고된 주한미군 한국인 근로자의 무급휴직이 결국 현실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 협상 막바지 튀어나온 ‘사드 비용 변수’


SMA 협상 초기만 해도 사드 비용 문제는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미국이 지난해 대비 5배의 증액안(약 48억 달러·약 5조9116억 원)을 한국에 요구하면서 거론한 여러 인상 요인 가운데 하나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제임스 드하트 미 국무부 선임보좌관 등 미측 협상단도 지난해 말 기자회견에서 주한미군의 순환배치 비용이 방위비 증액의 주된 이유라는 취지로 언급하면서 사드 비용 문제는 상대적으로 관심을 받지 못했다. 한미 협상 당국도 사드 비용을 다루는 것에 소극적이었다고 한다. 사드는 배치 때부터 한국 내에서 찬반 논란이 불거졌던 민감한 사안인 만큼 자칫 외교안보 쟁점으로 비화할 소지가 크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협상이 결렬을 거듭하며 막바지로 치닫는 가운데 미국에서 불쑥 튀어나온 ‘사드 변수’가 논란을 촉발시키는 ‘도화선’이 됐다.

미 육군이 지난달 발표한 2021년 예산안에서 성주 사드 기지 내 군사시설(무기고·보안조명·전기상하수도·도로포장 등)을 짓는 프로젝트에 ‘한국 부담 건설비용(Korea funded construction)’이란 명목으로 4900만 달러(약 580억 원)를 책정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미 육군은 이 비용의 출처를 ‘방위비분담금’이라고 적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실상 사드 기지의 개보수 비용을 방위비로 충당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군 소식통은 “사드는 주한미군의 핵심 전력인 만큼 성주 사드 기지의 증축·시설 개보수 비용도 한국이 부담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 사드는 트럼프발(發) 방위비 압박의 출발점

사드 비용의 방위비 전가 논란은 이미 예견됐던 상황이라는 분석이 많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직후부터 사드 비용의 한국 부담을 줄기차게 요구해왔기 때문이다. 올 1월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7월 외교안보 참모들이 모인 자리에서 한국이 미사일방어(MD) 비용으로 100억 달러(약 12조3300억 원)를 부담해야 한다면서 사드와 주한미군 철수를 연계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정부 관계자는 “사드는 미국의 대표적 최첨단 무기여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방위비 증액을 압박하는 데 더 없이 유용한 수단”이라며 “어떤 방식이든 사드 비용을 방위비분담금에 포함시키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2017년 사드 배치 과정에서 한미가 합의한 비용 분담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시 한미는 주둔군지위협정(SOFA)에 따라 한국은 기반시설과 부지를 제공하고, 미국은 운영 유지를 각각 책임지기로 합의한 바 있다. 이를 준용하면 한국은 전기·상하수도와 도로포장 등의 기반시설 관련 비용만 대고, 나머지 기지 시설의 개보수와 사드 운용 비용은 미국이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합의가 그대로 적용되기 힘들 것이라는 반론이 지배적이다. 군 당국자는 “3년 전 사드 비용 분담 합의는 한미 모두 이전 정부에서 결정된 사안”이라며 “‘미국 우선주의’를 강조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기존 합의를 유지 또는 적용하는 데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 육군이 2021년 예산안에 성주 사드기지의 개발 비용을 거론하면서 기존 한미 합의에 따른 분담 명세를 기술하지 않고, 모두 뭉뚱그려 한국이 부담하는 것처럼 적시한 것도 그런 기류를 뒷받침하는 정황으로 해석된다. 군 관계자는 “사드 비용은 SOFA 규정이 아닌 한미 SMA 협상을 거쳐 합의된 방위비 항목으로 포함시키겠다는 의도가 읽힌다”고 말했다.

정부 일각에서도 미국이 사드 비용(기지 증개축·장비 운영 유지 등)의 일체 또는 상당 부분을 방위비분담금 항목(군수지원비)에 포함시킬 가능성이 큰 걸로 보고 있다.

○ ‘사드 업그레이드’ 비용도 요구하나

올해 이후로도 미국이 사드를 방위비 증액의 주요 명분으로 활용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는 SMA 협상 내내 한국 방어와 직결된 소요비용(무기장비 및 병력, 시설 증개축 등)은 한국 정부가 분담해야 한다는 원칙을 누차 강조해왔다.

한국 방어에만 사용되는 전력과 대북 미사일 방어 등 한국군이 부족한 ‘보완전력(bridging capability)’에 들어가는 비용에 한국이 최대한 성의를 보이라는 것이다. 군 관계자는 “사드는 두 조건을 완벽히 충족하는 전력이라는 점에서 미국이 사드 관련 비용의 최대치를 다양한 방식으로 한국에 청구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사드 업그레이드’의 비용 분담까지 요구할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 미사일방어청(MDA)은 최근 미 본토와 괌, 성주기지 등에 배치된 사드 7개 포대의 성능 개량에 10억 달러(약 1조2533억 원)를 배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

사드 발사대를 포대(레이더·지상통제소)와 분리배치 후 원격 발사할 수 있도록 하고, 사드와 신형 패트리엇(PAC―3 MSE) 요격미사일 포대를 통합 운용해 요격시간 단축과 사각지대 해소 등 최적의 요격시스템을 구축하는 작업이다. 미사일방어청은 2021년 상반기까지 성주 사드 포대를 개량하는 데 약 2억 달러(약 2466억 원)를 투입할 계획이다. 군 소식통은 “미 국방부 내에서는 ‘사드 업그레이드’의 최대 수혜자가 한국이라는 인식이 퍼져 있다”면서 “미국이 성주에 배치된 사드의 ‘업그레이드’ 비용에 대해 한국이 동맹 차원에서 적절히 기여해 달라는 메시지를 보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 ‘초읽기’ 들어간 주한미군 한국인 직원 무급휴직

이런 가운데 17∼19일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한미 SMA 7차 회의가 결렬되면서 주한미군 한국인 근로자의 사상 첫 무급휴직 사태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미국은 한국인 근로자의 인건비 문제라도 먼저 타결하자는 한국의 제안마저 거부했다.

앞서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 등 미 당국자들은 3월 말까지 협상이 타결되지 않을 경우 4월 1일부터 한국인 직원들의 무급휴직이 불가피하다고 누차 밝힌 바 있다. 주한미군은 25일 한국인 근로자들에게 무급휴직 시행을 개별 통보한 상태다. 주한미군 관계자는 26일 “한미가 차기 협상 일정도 잡지 않는 점에 비춰 ‘극적 반전’이 없는 한 4월 1일부터 (무급휴직이) 예정대로 시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 국방부는 주한미군 한국인 근로자 9000여 명의 약 65%(5800여 명)에 대해 무급휴직을 실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생명과 건강, 안전 분야의 필수 인력만 한시적으로 운용하겠다는 것이다. 주한미군은 한국인 근로자의 대규모 공백 사태가 기지·부대 운영에 차질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무급휴직 규모를 축소해 줄 것을 미 국방부에 건의했다고 한다.

하지만 미 국방부는 SMA 협상의 조속한 타결이 유일한 해법이라는 방침을 고수하면서 부정적 입장을 내비친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선 막판 타결 가능성에 실낱같은 기대를 거는 분위기다. 주한미군 한국인 근로자의 무급휴직이 연합방위 태세에 미칠 파장을 미국도 잘 알고 있는 만큼 어떤 식으로든 협상을 재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군 소식통은 “주한미군 한국인 근로자의 무급휴직 강행은 SMA 협상 차원을 넘어 동맹관계에도 큰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도 부담을 느낄 것”이라며 “미국이 일단 자체 예산으로 한국인 근로자의 임금을 지급한 뒤 협상을 이어갈 개연성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방안도 한미 간 방위비 이견이 좁혀지지 않는 한 ‘미봉책’이 될 공산이 크다. 미국은 최초 요구한 48억 달러보다는 낮췄지만 여전히 한국이 수용하기 힘든 금액을 고수 중인 반면 한국은 지난해 대비 10% 안팎의 인상으로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군 고위 관계자는 “미국은 기대 수준의 방위비 증액안이 도출될 때까지 주한미군 한국인 근로자의 무급휴직을 포함한 다양한 수단으로 한국을 압박할 것”이라며 “이런 조치가 미국에 득보다 실이 크고, 결국 동맹관계를 금 가게 하는 ‘독’이 될 수 있음을 미국에 확실히 납득시키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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