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칸나에[임용한의 전쟁史]〈103〉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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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비극이고 전투는 참극이다. 승자나 패자나 가족, 친구를 잃고 삶과 인간성에 회복 불능의 상처를 입는다. 이런 비극을 방지하는 방법은 전쟁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류는 아직도 그 방법을 모른다. 국제협약, 국제기구, 슈퍼 파워, 세계의 경찰 이 모든 시도는 절반의 성공도 거두지 못했다. 군비 축소, 무기 폐기, 군대 해산, 세계 혁명이 확실한 방법이라고 주장하는 분도 있는데,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그것은 전쟁을 방지하기는커녕 유발 요인이 될 것 같다.

전쟁을 피할 수 없다면 피해를 최소화하자는 냉정한 현실주의도 있다. 그 방법은 전쟁을 최대한 짧게 끝내는 것이다. 개전 초에 대규모 회전을 벌여 적을 단숨에 섬멸한다. 잔혹한 해결법이지만 이것이 최선이라고 말한다. 이런 주장을 하는 전술가들에게 이상적인 모델이 한니발이 거둔 칸나에의 승리였다. 기원전 216년 8월 2일, 지금은 올리브 나무가 가득한 이탈리아 남부의 평원에서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은 2배 가까이 되는 로마군을 완벽하게 섬멸했다. 로마군 8만의 보병과 6000∼7000명의 기병 중 5만∼7만 명이 사망하고, 1만1000명이 포로가 됐다. 이 전투의 생존자는 후방에 대기하던 약간의 예비 병력들뿐이었다.

“슈퍼 칸나에.” 섬멸전의 추종자들은 자신들의 해법을 이렇게 불렀다. 닥쳐올 전쟁을 대비하려면 슈퍼 칸나에를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칸나에 전투를 이론화하면서 군사학자와 군인들 간에 긴 이론적 논쟁도 발생했다. 섬멸전 이론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서 슈퍼 칸나에를 보장하는 전술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칸나에 전투를 섬멸전으로 만든 주역은 로마군 지휘관 테렌티우스 바로이다. 상대편 지휘관이 어리석음으로 아군을 도와주지 않은 이상 이런 섬멸전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전쟁사를 보면 세기의 승리 뒤에는 항상 상대편의 어리석은 행동이 있다. 한국의 보수라는 사람들을 보면 이 말이 정확하게 맞는 것 같다. 무책임, 어리석음, 이기주의, 단 1명의 바로가 로마를 멸망시킬 뻔했는데, 우리는 셀 수도 없다.
 
임용한 역사학자
#슈퍼 칸나에#전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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