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쯤, 기자는 긴박한 장면을 목격했다. 차량 한 대가 국방부 위병소를 지키던 군사경찰(헌병)의 검문 요구에 불응하더니 돌진한 것. 군사경찰 여러 명은 차량을 뒤쫓으며 “정지하라”고 외쳤다. 이외에 별다른 대책은 없어 보였다. 상황은 차량이 100여 m를 질주한 뒤 스스로 멈춰서면서 종료됐다.
차량 탑승자는 국방부 산하 외부기관 직원이었다. 국방부 출입 차량은 보안 문제로 사전 등록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는 국방부에서 열린 회의에 지각하자 마음이 급해져 미등록 차량으로 돌진했다고 한다. 이 남성은 군부대 침입에 준하는 행위를 했지만 별다른 처벌은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은 그에게 부대를 위해(危害)할 목적이 있었는지 등을 파악하는 선에서 해프닝으로 마무리됐다.
최근 잇따른 군부대 침입 사건으로 군이 여론의 포화를 받고 있다. 7일 민간인이 제주 해군기지에 침입한 사건이 시작이었다. 16일엔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예하 방공진지에 민간인이 침입한 사건이 일어났다. 앞서 1월엔 진해 해군기지에, 지난해 10월엔 해군작전사령부에 민간인이 침입했다. 지난해 6월 북한 목선의 삼척항 귀순 등 잇따른 경계 실패 사건으로 얻은 ‘당나라 군대’라는 오명을 떼어내나 싶던 군은 또다시 모욕적인 수렁에 빠졌다.
물론 군의 경계 실패는 어떤 변명으로도 합리화될 수 없다. 경계는 모든 작전의 기본이어서다. 문제는 장병들이 침입 현장을 눈앞에서 목격했다고 하더라도 이를 막을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모든 침입 사건에 대해 군을 무작정 비난할 수만도 없는 이유다.
군 수사기관 관계자는 “철통 경계 태세를 갖춘다고 해도 작정하고 돌진해버리면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호소했다. 장교 A는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 등에는 수하해도 불응하거나 도주할 경우 초병이 무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적이 아닌 이상 과잉 대응 비판을 감수하고 차량을 향해서라도 총기를 사용할 병사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기자가 목격한 차량 돌진 사건에 대해 군사경찰이 발만 구른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군 안팎에서 경찰 등 민간 수사기관에서 민간인의 군부대 침입 사건을 보다 엄정하게 수사하고 일벌백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군부대에 무단으로 들어가면 엄벌에 처해진다는 인식이 확산돼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는 초병 폭행 등이 동반되지 않은 군부대 침입 사건에 대해선 민간인에 대해 군이 수사할 권한이 없다. 군은 대공용의점 유무만 판단한 뒤 경찰에 사건을 인계한다. 침입으로 피해를 입은 군이 직접 수사하지 않는 탓에 훈방 처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물을 캐러 갔다”거나 “술에 취해 실수로 들어갔다” “고기가 잘 잡히는 곳이 있다고 해서 갔다”고 하면 없던 일이 되기 일쑤다. 기소되더라도 벌금형이나 집행유예 등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다.
박한기 합참의장은 19일 경찰청장에게 군사시설을 무단 침입한 민간인을 강력 처벌해달라는 내용의 협조 서신을 보냈다. 최근 국방부도 법무부에 같은 내용의 서신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군의 이런 협조 요청에는 민간 수사기관의 엄단이 문제 해결의 핵심이라는 인식이 반영돼 있다. 군의 한 법무관은 “언론에 보도된 군부대 침입 사건은 빙산의 일각”이라며 “엄벌이 이뤄지지 않는 데다 향후 상비병력 감소까지 진행되면 침입 사건은 더 자주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대민 관계를 의식해 침입 사건을 유야무야해 온 군도 자성할 필요가 있다. 이번 제주기지 사건의 경우 철조망을 절단하는 등 사안이 중대해 군이 경찰에 군 형법상 군용시설 등 손괴 혐의 등을 적용한 고소장을 제출했다. 그러나 군은 다른 사안에 대해선 ‘지역민과의 상생’ 등을 이유로 고소·고발장 제출을 꺼려 왔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17일 장관 지휘서신을 통해 장병들에게 “국민의 군대로 거듭날 수 있도록 경계 태세를 확립해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국민의 군대’라는 뜻이 국민이라면 언제라도 들어와도 되는 군대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대한민국 군부대가 더 이상 ‘나물 캐기 좋은 곳’이나 ‘낚시 명소’, ‘술주정하기 좋은 곳’이 돼선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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