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 강요하는 방역체계 바꾸자[현장에서/김태언]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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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로로 쓰러져 3월 30일에 세상을 떠난 정승재 주무관의 빈소가 경기 고양시 인제대 일산 백병원에 차려졌다. 파주시농업기술센터 제공
과로로 쓰러져 3월 30일에 세상을 떠난 정승재 주무관의 빈소가 경기 고양시 인제대 일산 백병원에 차려졌다. 파주시농업기술센터 제공
김태언 사회부 기자
김태언 사회부 기자
“아침 ‘새벽’이라는 이름의 별을 보며 출근했다.”

사내메신저에 올려놓은 글은 씁쓸했다. 흔히 부르는 ‘상태 메시지’란 용어가 이리도 안타까울 수 있을까. 경기 파주시농업기술센터의 정승재 주무관(51)은 지난달 20일 근무 도중 심근경색으로 쓰러졌다. 열흘 뒤인 지난달 30일, 정 주무관은 출근 때마다 바라봤던 새벽별이 됐다.

고인은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방역담당관이었다. 정 주무관은 쓰러지기 전날도 숙직했다. 침대도 없이 어른 다섯이 누우면 꽉 차는 숙직실. 차가운 외풍에 코가 얼얼한 그 방에서 겨우겨우 눈을 붙였다. 그는 지난해 11월부터 지금껏 주5일 근무 내내 여기서 쪽잠을 청했다.

실은 이도 그나마 나아진 거였다. 지난해 9∼10월은 정말 끔찍했다. 파주시에서 국내 처음 ASF가 발생하자, 가축방역팀 소속인 정 주무관은 하루 20시간씩 일했다. 오전 5시경부터 영상회의자료를 만들었다. 하루에도 서너 차례씩 거듭되는 회의, 농장주로부터 끊임없이 걸려오는 전화들. 밤을 꼴딱 새우는 경우가 허다했다. 같은 팀원은 “상황이 너무 급박해 숙직실에 내려갈 시간도 없었다”며 “사무실 의자에 앉아 잠깐씩 조는 게 전부였다”고 했다.

동료들은 그래서 더 미안했다. 하루 종일 붙어있었는데도 ‘추억’이 없다고 했다. 김영완 가축방역팀장(47)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얼굴을 맞대고 있었지만, 서로 늘 바빴다. 그저 일하는 모습 말곤 떠오르지 않는다”며 울먹거렸다. 그래도 정 주무관은 자주 웃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긴급 상황에 대처하는 시스템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확한 업무 분담 체계를 마련하지 않으면 이런 아픔은 언제든 반복되기 때문이다. 이성식 경기도수의사회장(69)은 “구제역과 같은 전염병은 해마다 찾아온다. 그런데도 여전히 인력난에 시달려 수의직 공무원들의 과로가 일상이 됐다”며 “적절한 보상 체계와 인력 충원으로 업무 부담을 줄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고인이 떠난 뒤 세상은 바뀌었을까. ASF와의 사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정 주무관의 팀원 5명은 지금도 하루 몇 시간밖에 못 자고 방역대책 마련에 분주했다. 김 팀장은 “여러 이유로 ASF는 국민들의 기억에서 많이 지워져 있다. 하지만 지금도 ASF는 ‘심각 단계’다. 당장 고인의 빈자리를 어떻게 채워야 할지 막막하다”고 했다.

“방역에 혼신을 쏟아부은 파주시청 한 젊은 공무원이 과로로 쓰러져 안타깝게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과중한 업무로 유명을 달리하게 된 것이 매우 비통하며, 유가족께 깊은 애도의 마음을 전합니다.”(최종환 파주시장이 소셜미디어에 쓴 글)

더 이상 비통해하지 말자. 이제 누군가의 희생을 그만 강요하자. 제도를 바꾸지 않으면 악순환은 끝나지 않는다. 새벽별이 된 고인에게 삼가 조의를 표한다.
 
김태언 사회부 기자 beborn@donga.com
#방역체계#희생#정승재 주무관#과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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