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환상으로 판단하는 것과 현실감각으로 판단하는 것 중에 어느 쪽이 더 바람직할까요? 환상에서 깨어나 현실을 정확하게 들여다봐야 제대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우세할 겁니다. 옳습니다만, 전적으로 옳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보는 눈이 얼마나 객관적인 현실에 기반을 두었을까, 늘 궁금합니다. 현실 자체보다는 현실에 투사한 환상을 바탕으로, 보고 이해하고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지 않나요? 사고나 질병은 절대로 겪지 않을 것이라는 환상이 마음을 평안하게 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뜻밖의 사고를 당하거나 진단을 늦게 받을 가능성은 늘어납니다.
환상과 달리 현실의 삶은 혹독하고 무겁습니다. 쉽게 행복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습니다. 삶의 무게를 줄이고 견디는 쉬운 방법은 환상을 갖는 겁니다. 세상은 아름답고, 인생은 살 가치가 있으며, 나는 중요한 사람이라는 환상입니다. 그 외에도 환상의 대상은 아주 다양하며 다른 사람이나 물건이 대상이 됩니다. 타들어 가는 갈증을 잠시 달래주는 한 모금의 물처럼 환상은 달콤합니다. 환상을 현실을 무시하는 쓸데없는 일로만 여길 필요는 없습니다. 잘 쓰면 약입니다. 어려서 부모에게 가지는 환상은 안전하고 순탄하게 성장하는 바람막이입니다. 어른이 되어도 환상은 닮고 싶고 좋아하는 사람의 이상화(理想化)로 이어집니다. ‘이상화’란 자신이 바람직하게 생각하는 장점들이 특정 사람이나 대상에게 속한다며 찬미하는 행위입니다.
아무리 대단한 환상도 ‘유효 기한’이 있습니다. 기한이 지나면 환상에서 벗어나는, 탈환상(脫幻想)이 찾아옵니다. 청소년기에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자식은 부모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납니다. 심하면 환멸(幻滅)로 이어집니다. 선생님에 대한 환상, 직장 상사에 대한 환상, 연인이나 배우자에 대한 환상, 리더에 대한 환상도 예외가 아닙니다. 환상의 최종 목적지는 환멸입니다. 환상이 발산하는 에너지는 생산적이지만 환멸이 뿜어내는 에너지는 파괴적입니다. 그러니 마음을 잘 다스리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려면 환상과 환멸 사이에서 ‘간 맞추기’를 조심스럽게 해야 합니다.
간 맞추기가 까다롭기는 음식 만들기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마음의 간 맞추기’는 훨씬 더 어렵습니다. 너무 싱거워도, 너무 짜도 문제입니다. 환상과 환멸의 균형을 잃으면 갈등이 증폭되고 마음의 장애가 생깁니다. ‘경계선 성격장애’라는 병에는 ‘마음의 동요’라는 주요 증상이 있습니다. 엄마가 세상에서 최고로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가 갑자기 세상에 없는 원수가 됩니다. 동요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관계는 치료자도 예외가 아니어서 환자 태도가 급변해 치료는 자주 난관에 빠집니다.
사랑은 나, 그 사람, 우리에 대한 환상에 빠지는 겁니다. 연애와 결혼이라는 무대의 주연은 환상이지만 이혼의 무대에서는 환멸로 바뀝니다. 연애, 결혼, 이혼에서 당사자들의 현실감각은 조연일 뿐입니다. 사랑이라는 긍정적인 감정은 환상에서 피어나고, 미움이라는 부정적인 감정은 환멸에서 표현됩니다.
환상이 깨어지고 환멸로 이어지려는 순간 우리는 눈을 감습니다. 두려움, 불안, 우울, 좌절감, 무력감 같은 거북한 감정이 몰려오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 인지기능이 멈추면서 부정(否定)이라는 방어기제를 썼다는 깨달음조차 마비됩니다. 보고 싶지 않아 눈을 감으면 바로 눈앞의 것도 놓칩니다. 마음은 잠시 편해도 눈앞에 있는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눈을 감아서 없앨 수는 없습니다. 결국 자신이나 상대방을 속이는 겁니다. 상당수의 암 환자가 진단 초기에, 드물게는 끝까지 암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합니다. 환상이나 환멸의 가치 판단에 ‘무조건 좋음’과 ‘무조건 나쁨’이라는 흑백논리를 쓰면 실수하는 겁니다. 적응에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짙음과 옅음이 잘 어우러진 회색의 논리로 보아야 잘 보입니다.
‘아름다운 세상, 살 만한 인생, 쓰임새 있는 나’는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이 출발점입니다. 프로이트의 막내딸이자 자아 심리학파의 리더였던 정신분석가 아나 프로이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는 항상 내가 강해지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길을 내 밖에서 찾아 왔다. 그러나 그 길은 내 안에 있다. 항상 거기에 있다.”
선거가 바로 눈앞에 있습니다. 국회의원 선출은 대의 민주주의의 꽃을 뽑는 매우 중요한 행위입니다. 선거를 앞둔 말과 말의 홍수 속에서 판단력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내 생각이 분명하지 않으면 여기저기 휩쓸려 다니다가 후회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누구를 뽑느냐는 100% 환상, 100% 환멸이라는 양극단으로 판단할 일이 아닙니다. 후보자에 대한 개인적인 총평이 각각 몇 %의 환상과 환멸을 합친 것인지를 냉철하게 분석해서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마음에서 미리 간을 맞추고 현장에서 끝까지 간을 보아야 합니다. 투표 포기는 조금이라도 더 나은 ‘보호자’를 선택할 권리의 포기입니다. 우리 모두의 미래를 내동댕이치면서 그저 속만 상하지는 않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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