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앞서 골목상권 휩쓴 최저임금[현장에서/허동준]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2일 03시 00분


코로나19로 텅 빈 남대문시장 상점 거리.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코로나19로 텅 빈 남대문시장 상점 거리.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허동준 산업1부 기자
허동준 산업1부 기자
경남 사천시에서 화장품 가게를 운영하는 A 씨는 요즘 텅 빈 거리를 보는 게 일상이 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도심을 오가는 발걸음이 뚝 끊겼기 때문이다. 매출이 0인 날도 부지기수다. A 씨는 “매출이 평소의 3분의 1로 줄었다”며 “퇴근시간 이후에도 손님이 없어 오후 8시면 가게 문을 닫는다”고 했다.

그나마 홀로 가게를 운영하는 A 씨의 사정은 나은 편이다. 옷가게를 하는 B 씨는 얼마 전 직원들을 모두 내보내고 가게 문을 닫은 뒤 음식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매출 없이 인건비 등 나가는 돈만 느는 게 버거워서다. B 씨는 “다들 상황이 어려워지면 직원부터 줄이니 ‘알바’ 생활도 얼마나 더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이들의 어려움이 100% 코로나19 때문일까. A 씨나 B 씨 대답은 ‘그렇지 않다’였다. 최저임금이 급상승해 이미 한계에 내몰린 상태에서 코로나19라는 ‘카운터펀치’를 맞았다는 것이다. 최근 2년간 최저임금이 너무 급히 올라 직원을 줄일 수밖에 없었고, 경기가 나빠지면서 소비도 줄어 경영이 악화되는 악순환이 시작됐다고 했다. 최저임금은 2017년 6470원에서 2018년 7530원으로 16.4% 올랐다. 2019년에는 10.9% 인상돼 8350원이 됐다. 올해는 8590원으로 2.9%라는 역대 세 번째로 낮은 인상률로 합의됐지만 자영업자들은 최저임금 인상 속도 조절 시기가 늦었다고 하소연한다.

실제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24개 주요 골목상권 업종의 각 협회 및 조합 등을 대상으로 경기 현황을 조사한 결과 경기 위축 및 방문객 감소에 따른 판매 부진(93.3%)과 최저임금 등 인건비 상승(50%)을 상권 악화의 원인으로 가장 많이 꼽았다.

응답 업종의 63.4%는 6개월을 버티기도 힘든 상황인 것으로 나타났다. 의류점, 가구점, 금은방 등 골목상권 주요 22개 업종은 2, 3월 평균 매출과 평균 순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42.8%, 44.8%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매출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 곳은 온라인 거래 증가의 수혜를 입은 택배업이 유일했다. 순이익 증가를 예측한 업종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아직 골목 곳곳에 감염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지만 이제는 코로나19 이후 골목에 활력을 되찾을 방안도 함께 고민해야 할 때다. 한경연 조사에서 응답 업종의 83.9%는 내년도 최저임금을 동결하거나 인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다는 의미다. 올해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에 제동이 걸렸을 때 여야 모두 환영의 뜻을 밝혔듯이 정치권도 답을 알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신속한 지원, 장기적으로는 최저임금 조절이 필요한 시점이다.
 
허동준 산업1부 기자 hungry@donga.com
#코로나19#최저임금#경제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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