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마스크[횡설수설/이진구]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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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Mask)의 어원인 라틴어 마스카(Masca)는 본래 공연에서 배우가 쓰는 가면을 말한다. 이탈리아어의 마스케라타(mascherata·가면무도회), 스페인어의 마스카라르(mascarar·얼굴을 칠하다), 속눈썹을 돋보이게 하는 화장인 마스카라도 여기서 파생했다. 요즘은 마스크라고 하면 먼저 호흡기 질환을 예방하는 의료용 마스크를 떠올리지만 본래는 얼굴을 가리고 화려하게 돋보이기 위해 썼던 셈이다.

▷천 마스크가 대부분이던 2003년 봄, 국내 한 대형마트에서 영국에서 처음으로 직수입한 일회용 황사 전용 마스크 4000개가 하루 만에 품절돼 화제가 됐다. 0.3μm(마이크로미터) 크기의 입자를 95%까지 걸러낼 수 있다는 제품인데, 황사와 함께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발병 우려가 커지자 동이 난 것이다. 마트 측은 1만5000장을 추가 주문했지만 언제 올지 알 수 없다고 했는데, 전 세계에서 동시에 1500만 장이나 주문이 폭주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황사와 감염병이 고기능 마스크 시대를 연 것이다.

▷그냥 마스크라고 부르기 미안할 정도로 요즘 마스크는 고수준이다. 0.4μm 크기 입자를 94% 이상 차단하는 KF94 마스크가 평범할 정도다. 그것도 못 미더워서 0.02∼0.2μm 입자를 95% 이상 차단하는 미국 N95 호흡기를 쓰기도 한다.

▷코로나19 사망자만 1만3000명이 넘는 이탈리아에서는 슈퍼카를 만드는 람보르기니가 마스크와 보호 장구 등을 생산해 기부한다고 한다. 마스크는 인테리어 부서에서 만드는데 역대 람보르기니 모델 중 가장 많이 팔린 가야르도의 대표 색인 오렌지색으로 만들었다. 명품 브랜드들도 마스크 제작에 나섰다. 구찌는 공장 설비를 개조해 마스크 110만 개, 보호복 5만5000벌을, 프라다는 마스크 11만 개와 의료작업복 8만 개를 만들어 기부할 예정이다. 아르마니는 일회용 의료용 작업복을 만든다. 프랑스에서도 샤넬과 디올이 마스크 제조에 나섰다. 일각에서는 한정판과 마찬가지니 소장용으로 구입하고 싶다는 철없는 소리도 나온다.

▷이들 명품업체의 마스크 생산은 위기 극복 차원이지만 마스크로 감염병 예방과 패션을 동시에 노리는 업체가 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프랑스의 한 유명 디자이너가 만든 공기필터가 장착된 마스크는 70만 원이 넘는 가격에 팔리고 있다. 스포츠용품 회사는 운동할 때 쓸 수 있는 마스크도 만들고 있다. 유쾌하지 않은 이유로 마스크의 신세계가 열리고 있는데, 어쩌면 원래 마스크의 목적으로 되돌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마스크#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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