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택트 패션[간호섭의 패션 談談]〈35〉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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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얼마 전 패스트푸드점을 방문했습니다. 식사 때 마스크를 벗기도 그렇고, 얼른 테이크아웃을 해가기에도 최적화된 곳이기에 맘먹고 갔지요. 많은 분들이 줄을 서 계셨습니다. 하지만 “세트는 감자튀김으로 하실 거죠?” “음료는 콜라 드릴까요?”라는 목소리는 온데간데없고 ‘삑’ ‘뽁’ ‘쓰윽’ 그리고 ‘지익’ 하는 기계음만 들려왔습니다. 키오스크라는 자동주문기가 주문, 정산, 결제까지 사람을 대신하고 있었습니다. 외국, 특히 일본에 출장 갈 때는 어김없이 사용해서 큰 어려움은 없으나 보통 종업원에게 직접 주문하는 것이 훨씬 편했기에 키오스크를 선호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날은 선택권이 없었습니다. ‘면 대 면’으로 주문을 받는 것이 위험요소가 되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도 ‘삑, 뽁’ 원하는 주문을 하고 ‘쓰윽’ 카드를 긁고 ‘지익’ 주문표를 출력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날 저는 접촉을 의미하는 콘택트(Contact)와는 반대로, 소비자와 직원의 소통이 필요 없는 언택트(Untact) 소비를 몸소 실천했습니다.

이젠 톨게이트에서도 점점 하이패스 구간이 많아지고 공항카운터도 셀프 체크인이 보편화되고 있죠. 평생 이런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으셨던 저희 어머님조차 자동응답전화(ARS) 주문을 넘어 앱 결제를 위해 손자에게 홈쇼핑 앱을 깔아 달라는 애교 섞인 부탁을 하시니까요. 이제 이러한 변화는 분야를 막론하고 세대를 넘어서까지 확산되고 있습니다.

패션은 그 어떤 분야보다 언택트의 변화가 일찍이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이런 언택트 소비는 초창기에 외면을 받았습니다. 직접 입어 보고 눈으로 봐야 직성이 풀리는 소비자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았고, 또한 매장을 옮겨 가면서 비교하며 느끼는 경험의 즐거움도 포기하기 싫었기 때문이죠. 초창기 언택트 패션은 사이즈만 정확히 알면 실용적으로 입을 수 있는 언더웨어나 트레이닝복 같은 스포츠 웨어가 주류를 이뤘습니다.

하지만 라이프스타일이 바뀌면서 다른 대접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스마트폰의 보급과 정보기술(IT)의 발달로 내 손 안에서 언택트 패션을 경험할 수 있게 됐죠. 고화질 동영상 광고들은 사진의 평면적 한계를 넘어 입체로 의상을 보여주며 옷감의 재질, 문양을 실제처럼 재현했습니다. 게다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달로 세계 어디에 있든 최신 트렌드를 접할 수 있게 되면서 이를 반영해 업로드하는 스피드 또한 큰 매력이었습니다. 이는 소비자의 성향과 요구를 바로 파악해서 신제품에 반영하여 언택트 패션이 규모의 성장을 이루는 데도 한몫했죠. 럭셔리 브랜드들조차 패션쇼에서 스마트폰 촬영 금지를 포기하고 셀러브리티나 인플루언서를 통해 촬영을 장려하는가 하면 그간 무시해 왔던 온라인 쇼핑몰 매출에 큰 신경을 쓰게 됐습니다. 패션은 늘 변화해 왔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사건이나 상황들이 그 변화를 가속화하기도 하죠. 하지만 아무리 발달한 언택트 패션이라도 결국 내 몸과 접촉(Contact)해야 하는 건 변할 수 없는 진실입니다.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언택트 패션#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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