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파장 큰 ‘가을 신학년제’… 학생-학부모-교사 의견수렴이 우선[인사이드&인사이트]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6일 03시 00분


코로나가 다시 불러낸 학제개편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으로 개학이 연기돼 텅 빈 대구 수성구의 한 교등학교 교실. 대구=뉴시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으로 개학이 연기돼 텅 빈 대구 수성구의 한 교등학교 교실. 대구=뉴시스
김수연 정책사회부 기자
김수연 정책사회부 기자
[속보]교육부, 9월 신학기제 실시 곧 발표.’

4월 1일 휴대전화 문자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이런 메시지가 퍼졌다. 매년 3월이었던 1학기 시작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9월로 바뀐다는 것. 메시지에 첨부된 인터넷 주소를 클릭하자 ‘뻥이오’라는 과자 상표가 화면에 떴다. 만우절 장난이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같은 장난에 속아 넘어갔다. 그만큼 9월 신학기제가 중요한 관심사로 떠오른 셈이다. 이는 여름을 보낸 뒤 새 학년 첫 학기를 시작하는 제도다. 그래서 ‘가을 신학년제’가 조금 더 정확한 표현이다. 코로나19로 전국 초중고교의 개학이 한 달 넘게 미뤄지고, 급기야 온라인 개학이 결정되자 가을에 새 학년을 시작하자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온라인 개학 후에도 감염 우려로 현장 개학 시기가 불확실하다 보니 차라리 이 시기를 학제 개편의 기회로 삼자는 것이다.

해외 대다수 국가는 8, 9월에 새 학년을 시작한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한국도 이번 기회에 학제 개편을 논의하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하지만 전환에 드는 비용과 혼선이 워낙 크다 보니 학계에서도 ‘한국에선 불가능한 제도’라는 회의론이 있다.

○ 정권마다 반복된 논의

‘9월 신학기제, 9월 신학년제, 가을 학기제, 가을 신학년제….’

학년의 시작을 현행 3월이 아닌 9월로 바꾸는 학제의 이름은 다양하다. 학계에서는 ‘가을 신학년제’를 가장 적합한 용어로 꼽고 있다. 학년을 새로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신학기제’보다는 ‘신학년제’가, 8∼10월에 개학을 한다는 점에선 특정 월(月)보다는 ‘가을’을 붙이는 게 적합하다는 이유에서다.

사실 국내 학제는 여러 차례 바뀌었다. 일제강점기엔 일본식 학기제를 적용해 4월에 새 학년을 시작하는 ‘3학기제’였다. 이후 미군정 시기에는 미국식 방식을 따라 9월에 시작하는 2학기제였다. 1949년 교육법 제정 이후 한국의 기후 및 일반회계연도와의 연계성 등을 고려해 입학 시기가 9월에서 다시 4월로 조정됐다. 현재와 같은 3월 신학년제는 1962년부터 실시됐다. 이후 줄곧 별다른 논의 없이 유지됐다. 학교 난방시설이 열악해 여름방학보다 겨울방학이 긴 편이 나았고, 제도의 안정성이 중요했던 당시 사정 때문이다.

가을 신학년제를 둘러싼 논의가 처음 나온 건 김영삼 정부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7년 6월 교육개혁위원회에서 교육의 세계화를 위해 학제를 개편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하면서다. 노무현 정부 들어 다시 중요한 이슈로 부각됐다. 2006년 1월 제2차 국가인적자원개발기본계획에 ‘학제 개편 공론화’가 주요 정책과제로 포함됐다. 2007년 교육부 등 6개 부처가 ‘2+5 전략’(2년 더 빨리, 5년 더 길게 일하는 사회)을 발표하면서 가을 신학년제가 본격적으로 다뤄졌다. 취학연령을 만 5세로 낮추고, 수업 연한도 조정하는 전반적인 학제 개편이 논의됐다.

박근혜 정부도 같은 문제를 다뤘다. 취임 전인 2012년 12월부터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차원에서 가을 신학년제를 검토했다. 학제의 국제 통용성을 높일 뿐 아니라, 국내 관광 수요 등 내수 진작에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깔려 있었다. 취임 이후 ‘2015년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이를 추진하려고 했으나 교육 문제를 지나치게 경제적 논리로 접근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정책 도입의 필요성에 대한 이해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엇갈리면서 결국 무산됐다.

한동안 잠잠했던 가을 신학년제는 정권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번에 주목받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개학이 계속 미뤄지면서 아예 9월로 늦춰 새 판을 짜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기 시작한 것이다. ‘코로나로부터 아이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9월 신학기제로 변경해주십시오’라는 제목의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5일 기준 약 1만5000명이 동의했다. 비슷한 내용의 청원도 여러 건 있다.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지난달 21일 페이스북을 통해 9월 신학년제로 개편하자고 주장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 복잡한 손익계산서

“5년 전 도쿄대가 ‘가을 신학년제’ 전환을 발표했습니다. ‘이제 아시아에선 한국만 남겠구나’ 싶었는데, 결국 도쿄대의 계획이 무산됐습니다. 6개월을 밀고 당기는 변화인데도 교육계는 물론이고 산업계에 미치는 파장이 컸기 때문입니다.”

고전 제주대 교육대학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현재 아시아권에서 3, 4월에 학년을 바꾸는 ‘봄 신학년제’를 유지하는 국가는 한국과 일본뿐. 고 교수에 따르면 일본 도쿄대가 다른 선진국의 시스템에 맞춰 학제를 개편하려고 했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봄 신학년제를 가을로 바꾸려면 어쩔 수 없이 6개월간 ‘멈춤’이 불가피하다. 그 기간에 산업계는 필요한 인력을 수급하기 어렵다. 졸업생이 배출되지 않기 때문이다. 반년은 어찌 보면 짧은 시간이지만 그 공백이 경제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오래간다.

대학의 재정에도 타격이 클 것으로 보인다. 현재 코로나19 상황에서 논의되는 전환 방식은 ‘한 학기 밀어내기’다. 정상 등교가 어렵기 때문에 학사 운영을 중단한 채로 학제를 개편해서 자연스럽게 가을 신학년제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이 경우 대학은 한 학기 등록금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돼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2019년 전국 사립대 기준으로 보면 전체 교비회계 수입 중 등록금이 차지하는 비율이 57.1%에 이른다.

특정 시점부터 입학을 6개월씩 앞당기는 방식을 적용해도 막대한 비용이 발생한다. 가령 2021학년도 3월 입학 예정인 학생들을 6개월 앞당겨 입학시키면 2020학년도 가을의 신입생은 2배가 된다. 이들이 초중고교에 재학하는 12년 내내 한시적으로 특정 학년에 필요한 교원과 시설도 그만큼 늘어나야 한다. 학계에선 그 비용을 약 10조 원 이상으로 추산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 가을 신학년제가 한창 논의되던 2015년 한국교육개발원은 ‘9월 신학년제 실행 방안’이라는 연구보고서를 통해 여러 모델에 대한 비용을 산출한 바 있다. 2018학년도 초등학교 입학을 6개월 앞당기는 모델의 경우 전년도에 신입생이 두 배로 늘어 2028학년도까지 12년간 초중고교에서 10조4302억 원이 소요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교원 증원 및 학급 증설에 따른 비용이다. 2018학년도 3월 입학을 일괄적으로 그해 9월로 늦추면 2029학년도까지 10조3214억 원이 드는 것으로 추산됐다.

○ 사회 전반에 대한 영향 감안해 논의

정제영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가을 신학년제가 가진 장점이 있기 때문에 반복적으로 논의됐지만 실제로 적용한다면 최소 12년(초중고교 전체 학사연한)의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에 따른 개학 연기의 대안 차원에서 성급하게 추진할 경우 부작용이 클 수 있다는 지적이다.

고 교수는 “이번에는 감염병의 대응 전략으로 가을 신학년제가 등장한 것이다. 실제 제도 변화로 이어질 수준의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것은 아니다”라며 “이렇게 큰 비용에도 불구하고 학제 개편의 장점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여론이 형성돼야만 정책 추진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단순히 ‘개학 연기 대안’ 차원을 넘어 이번에 가을 신학년제가 가진 장점 자체가 부각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우선 국내외를 오가는 유학생이 과거보다 늘어난 상황에서 그동안 다른 국가들과 한국의 학사 운영 제도의 차이로 인해 발생했던 ‘6개월 공백’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 가을 신학년제는 보통 9월에 새 학년을 시작해 5월에 학사 일정을 마무리하게 되는데, 이에 따라 긴 여름방학을 인턴십이나 실습, 해외 연수 등에 활용하기에도 용이하다. 기후변화로 인해 겨울이 짧아지고 상대적으로 여름이 길어진 만큼 여름방학이 더 길어져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힌 문제인 만큼 손익계산서를 산출하는 것은 복잡한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차례 논의가 불발된 과거와 달리 교육환경이 많이 바뀐 점을 감안하면 비용은 줄어들 것이라는 낙관론도 있다. 황준성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은 “학령인구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전환기 비용은 그만큼 더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변화 방법도 좀 더 유연하게 고민할 수 있다. 특정 학년도부터 신입생 및 재학생의 교육과정을 1∼2개월씩 단축시켜 3∼6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개편하는 방식도 거론된다.

어느 쪽을 택하든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과 학부모들의 충분한 동의를 얻는 것이다. 과거 여러 번 학제 개편이 있었지만 당시엔 국가가 모든 것을 통제하는 것이 가능한 환경이었다. 입시정책 변화에 민감하고 교육제도에 대해 각각의 목소리가 큰 요즘 세상에선 복잡한 일이다. 정 교수는 “학생과 학부모, 40만 명이 넘는 교원집단, 교대·사범대의 예비 교사들, 그 외에 사회 곳곳에서 불만이 클 것”이라며 “가을 신학년제 전환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수연 정책사회부 기자 sykim@donga.com
#가을 신학년제#학제개편론#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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