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되면 놀이터나 공원으로 나온 아이들이 많은 시간을 보내는 친구가 있다. 바로 개미다. 아이들은 개미 떼의 행렬을 따라가기도 하고, 개미와 개미가 만나서 더듬이를 서로 움직이는 것을 관찰하기도 한다. 어떤 아이는 개미 떼가 가는 길을 발로 밟아 흩뜨려 놓기도 하고 잡아서 물에 빠뜨려 보기도 한다. 관찰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괴롭히는 것 같을 때 어떻게 말해 줘야 할까.
어떤 부모는 “세상의 어떤 생명도 소중한 것”이라면서 긴 설명을 해주기도 하고, 또 다른 부모는 “너는 왜 이렇게 잔인하니” 하면서 아이를 비난한다. “너 그러면 개미가 깨문다” 혹은 “네가 개미를 못 살게 구니까 개미들이 너 싫대”라며 감정을 자극하기도 하고, “덩치 큰 거인이 나타나서 너를 그렇게 누르면 좋겠어”라고 겁을 주기도 한다. 어쨌든 이렇게 하면 아이들은 마음이 안 좋아서 그 행동을 그만두기는 한다.
아이가 주변 자연 현상을 관찰하면서 호기심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일종의 지적 호기심이다.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에 결과를 확인하고자 행동에 옮기기도 한다. 개중에는 잘못된 것도 있다. 이때 부모는 혹시나 하는 불안으로 아이를 따끔하게 혼내기보다 아이의 호기심은 인정해주면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옳은지 지도해야 한다.
아이가 개미를 물에 빠뜨리려고 한다고 치자. 좀 어린 아이에게는 “궁금하지? 그런데 빠뜨리면 얘가 꼴까닥 하면서 죽거든. 그렇게 하면 안 돼. 개미도 얼마간은 살아야 되잖아. 그건 우리 지구에 필요하기도 해. 궁금할 때는 ‘개미를 물에 빠뜨리면 어떻게 될까요’라고 엄마 아빠한테 물어보렴. 같이 얘기해보자. 생각을 바로 행동으로 옳기는 것은 좀 하지 말아야 해”라고 말해준다. 아이가 “그럼 행동은 하지 마요?” 물으면 “아무리 궁금해도 한 번 생각해보고, 필요한 행동을 하는 거야. 한 번 생각해보고 어른들한테 물어봐. 그것도 좋은 방법이야”라고 알려준다.
이렇게 말해주면 어떤 아이는 “어떤 개미는 경찰까지 동원돼서 죽인다던데요”라고 묻기도 한다. “그건 원래 우리나라에서 살던 개미가 아니기 때문이야. 그 개미는 원래 살던 개미들을 죽여서 생태계를 엉망진창으로 만들거든. 그래서 못 들어오게 하려는 거야. 또 어떤 개미는 인간에게 해로운 것도 있어. 하지만 모두 그렇진 않아”라고 설명해준다. 아이가 “그럼, 궁금한데 어떻게 해요”라고 물으면 “찾아보자. 아마 개미에 대해서 공부를 많이 한 과학자가 적어 놨을 거야”라고 말해 주고 아이와 함께 과학 그림책이나 백과사전, 인터넷에서 관련 정보를 찾아본다. 박물관이나 과학관에 방문해도 좋다.
언젠가 좀 큰 아이는 내게 이렇게 물었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개미를 물에 빠뜨려본 적도 있지 않을까요? 과학자들은 실험을 많이 하잖아요.” 나는 그 아이에게 “맞아. 그런데 궁금하다고 바로 행동하지는 않아. 어떻게 연구를 할 것인가 생각하는 과정도 길게 거치고, 그 실험으로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분명히 한단다. 그런 실험은 살아있는 동물을 해롭지 않게 해야 한다는 윤리 규정도 따라야 해. 동물실험은 더 많은 인류나 자연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수단이어야 하거든”이라고 말해줬다. 아이는 “그래도 잘못 아닌가요”라고 했다. 나는 그럴 수 있다고 솔직히 말했다.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는 것은 절대 선이지만, 이것은 절대 선이라고 보지는 않아. 어떤 측면에서 보면 선하지 않은 거지. 우리 인간은 그런 행동을 최소한으로 하도록 노력해야 해.”
아이들은 관찰을 통해 모든 것을 파악하고 익혀 나간다. 그것이 과학의 가장 기본이다. 인간의 발전은 호기심에서 출발했다. 궁금한 것을 연구하고 점점 더 많은 것을 알아갔다. 그러면서 어찌 보면 인간은 자연계의 주인인 양 살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인간은 자연계의 주인이 아니다. 공존해야 한다. 우리도 생태계의 일부일 뿐이다. 우리가 어떤 동물에게는 공격자일 수도 있다는 것을 늘 잊지 말아야 한다. 또 피치 못하게 동물을 해하게 되는 동물실험 같은 것은 지구상에 살아가고 있는 많은 생명체에 도움을 주기 위한 것으로 ‘최소한’만 이루어져야 한다고, 아이에게도 가르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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