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중간에 치러지는 총선은 대체로 정부 정책과 집권 정당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이 강하다. 임기 절반 정도가 지나면 임기 초반에는 효과를 반신반의했던 정책들에 대한 성적표가 나오기 때문이다. 특히 경제정책은 결과가 수치로 집계되고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기 때문에 평가하기 좋은 대상이다.
이번 총선 역시 현 정부의 3대 경제정책 기조 즉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에 대해 여당은 그동안의 실적을 홍보하고, 야당은 비판하는 정책 대결의 장이 돼야 한다. 그중에서도 현 정부 경제정책의 간판 격인 소득주도성장과 이를 위한 3대 정책 수단인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대한 평가가 있어야 마땅하다.
선거 결과를 통해 정부와 여당은 기존 정책을 더욱 강하게 밀고 나갈 추진력을 얻거나 아니면 수정할 명분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이 민주사회에서 선거가 갖는 긍정적 자정(自淨) 기능 중 하나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는 코로나19가 모든 이슈를 덮어 정책 평가의 기회가 실종됐다. 인물도 정책도 모르는 ‘깜깜이 선거’ 가운데 거의 유일한 정책 대결이라는 게 긴급재난지원금이다.
워낙 정책 이슈가 없다 보니 국민혁명배당금당 대표라는 허경영 씨가 이번 총선 공약으로 국민 1인당 1억 원씩 주자는 게 화제다. 과거 허 씨가 내건 공약이나 기행들을 보건대 코미디 프로그램이라면 모를까, 나라 정책을 다루는 공론의 장에서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고 본다. 노이즈 마케팅 우려를 알면서도 굳이 들먹이는 것은 긴급재난지원금을 둘러싸고 멀쩡한 정당들이 보이는 행태들이 허 씨와 다른 게 뭔가 싶어서다.
우선 국민의 세금이거나 후세대의 빚인 수십조 원을 동원하면서 깊이 고민한 흔적을 찾기 어렵다. 새로운 논리나 추가 재정조달 방안 없이 며칠 사이 수조 원이 왔다 갔다 한다. 일단 표를 위해서는 지르고 보자는 식이다. 이대로 가도 연말에 국가부채가 815조5000억 원에 이른다. 재정건전성의 심리적 마지노선이라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40% 선을 넘어선다. 공무원·군인 연금의 구멍을 때울 돈까지 합치면 국가부채가 작년 말 기준으로 이미 1743조 원이다. 저성장 기조에 코로나 불황까지 겹쳐 세금 수입은 줄어들 게 뻔하다. 이번 불황은 단기간에 끝날 일이 아니다. 피해 구제와 경기 회복을 위해 빚을 더 낸다고 해도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상황이다.
책임이 덜한 야당일수록 선거에서 찬란한 약속을 제시하기 쉽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은 그들과 입장이 다르고, 달라야 한다. 이번 총선 결과에 관계없이 계속 정책을 집행할 권한과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야당에 대해 무책임한 발언을 자제하라고 비난할지언정 똑같은 경쟁을 벌여서는 안 된다. 그런데 한술 더 뜨고 있는 게 현실이다.
우리는 1997년 외환위기라는 국가적 재난을 ‘위장된 축복’으로 만든 경험이 있다. 일시적 진통제나 시원한 사이다가 아니라 뼈를 깎는 고통을 통해서다. 우리 정치가 87년 체제에 머물러 있다면 경제는 기본적으로 97년 시스템에서 머물러 있다. 그렇지 않아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게 시스템을 바꿀 때가 됐다.
코로나 쇼크를 또 한 번의 위장된 축복으로 만들 수 있다. 좀비 기업들을 자연스럽게 정리하고, 노동시장 개혁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고, 규제혁신을 통해 기업들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 이것이 시장경제에서 불황이 가지는 순기능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선 경제 전문가들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표에 휘둘려 거꾸로 가고 있다. 국민이 정신 차려 바로잡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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