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쯤 청년 일자리 문제를 취재하면서 ‘광주형 일자리’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산업 고도화가 불러오는 일자리 감소는 선진국들이 이미 경험한 일이다. 이들도 대안을 모색했지만 해답으로 참고할 만한 성공 사례는 많지 않았다. 그나마 모범 사례로 인정받는 것이 평균보다 낮은 임금을 감수하면서 완성차 공장을 국내에 남긴 독일 폭스바겐의 ‘아우토 5000’ 프로젝트 정도였다.
이 사업을 모델로 추진 중인 광주형 일자리가 착공한 지 반년도 채 안 돼 삐걱대고 있다. 노동이사제 도입 등 노조 측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지역 노동계가 사업 이탈을 선언하면서다. 투자자들도 이달 말까지 노동계가 복귀하지 않으면 사업 자체를 재검토하겠다며 최후통첩을 날렸다. 광주형 일자리 사업은 사업주체인 광주글로벌모터스가 내연기관 기반의 경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연간 최대 10만 대 위탁 생산하는 프로젝트다. 하지만 자동차 업계를 취재하는 기자 입장에서 경형 SUV는 매력을 갖기엔 부족한 차종이다.
실제로 경형 SUV는 국내에서 한 번도 생산한 적이 없다. 인건비 등의 생산 여건과 소비자 수요를 고려했을 때 자동차는 크고 고급스러울수록 수익성을 내기가 쉽다. 경형 SUV는 돈 벌기가 쉽지 않은 차인 셈이다. 현대차가 경형 SUV는 물론 경차도 만들지 않는 이유다.
주요 투자자이자 위탁 생산을 의뢰하는 현대차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생산하던 차를 광주형 일자리 사업으로 가져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나마 경형 SUV라는 새로운 차종으로 틈새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내연기관 차량이 전기차에 비해 훨씬 많은 부품과 일손이 필요하기 때문에 일자리 창출 면에서는 도움이 될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경소형 차량이 갈수록 전기차로 바뀌고 있는 트렌드를 거스르는 것이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지방자치단체와 노동계, 기업이 함께 힘을 모으기로 하면서 광주형 일자리는 닻을 올렸다. 기자 역시 일자리 실험이 성공을 거두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하지만 사업의 성공은 참여자들이 신뢰를 지키면서 차근차근 미래를 준비해 나갈 때만 가능하다. 광주형 일자리의 ‘3500만 원’이라는 초봉은 누가 강요한 수치가 아니다. 뒤늦게 완성차 제조에 뛰어들면서 그나마 팔릴 수 있는 차를 납품하기 위해 산출된 수치다. 현실은 이렇게 척박한데 벌써부터 기존의 약속을 깨면서 노동의 권리만 앞세우면 첫발조차 제대로 떼지 못할 수도 있다.
3년 전 청년 일자리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취재하는 과정에서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일자리 나누기는 발상은 좋지만 실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한 프로젝트라고 했다. 그 낮은 가능성을 성공으로 돌릴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이 ‘양보와 자제’ 두 가지뿐이라는 지적이 새삼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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