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세계에서 확진자가 매일 수만 명씩 발생하고 있다. 1948년 출범한 세계보건기구(WHO)가 팬데믹을 선언한 일은 1968년 홍콩독감, 2009년 신종플루에 이어 세 번째다. 홍콩독감은 전 세계적으로 100만 명의 사망자를 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종플루는 세계적으로 약 20만 명의 사망자를 냈다. WHO가 설립되기 전인 1918년 발생한 스페인 독감은 세계에서 약 3억 명을 감염시켜 2000만∼5000만 명을 사망하게 했다.
질병은 감염성과 비감염성으로 구분된다. 감염성 질병은 세균(박테리아), 바이러스, 곰팡이, 기생충 같은 병원체가 인간의 몸에 들어와서 병을 일으키는 것이다. 우리 몸에는 수많은 박테리아와 바이러스가 들어와서 살고 있는데, 일부가 인체 조직을 손상시키는 병원체가 되는 것이다. 인간이 이러한 세균과 바이러스를 인식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7세기 현미경이 개발되면서 세균을 관찰할 수 있게 됐고, 20세기 전자현미경이 발명된 뒤에 바이러스를 볼 수 있게 됐다. 비감염성 질병은 당뇨, 고혈압 등과 같이 병원체 없이 일어날 수 있는 것들이다. ○ 돌연변이가 만드는 변종 바이러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종족을 보존하기 위해 유전정보를 DNA 또는 RNA에 보관해 자손에게 물려준다. 인간을 포함한 대부분의 생명체는 두 가닥으로 돼 있는 DNA에 유전정보를 저장하고, 바이러스는 RNA에 저장한다.
종족을 보존한다는 것은 생식세포를 만드는 것인데, 생식세포는 자신의 유전정보를 복사해 만든다. 이 복사 과정에 오류가 발생할 수 있는데, 이것을 돌연변이라 한다.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기존 생명체와 다른 존재가 된다. DNA는 두 가닥으로 돼 있어서 혹시 한쪽이 손상되더라도 상대 쪽 가닥이 정보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원상회복이 쉽다. 그러나 한 가닥으로 돼 있는 RNA는 손상되면 복원이 어렵다. 그래서 바이러스에는 돌연변이가 더 자주 발생하고, 신종 바이러스는 바로 이렇게 만들어진 것들이다. 최근에 나타났던 에볼라(Ebola), 사스(SARS), 메르스(MERS) 등이 모두 이런 것들이다.
일부에서는 최근 들어 변종 바이러스가 과거에 비해 자주 나타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게 느낄 수 있겠지만 과학적인 관찰은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생명체에는 끊임없이 돌연변이가 일어난다. 그러나 돌연변이는 거의 일정한 비율로 일어난다. 바이러스가 현대인을 공격하기 위해 돌연변이를 더욱 자주 일으킨다고 보기 어렵다.
변한 건 돌연변이의 빈도가 아니라 인간 사회의 밀집도다. 밀집도가 올라가면서 접촉자 숫자가 늘어났다. 또 교통수단의 발달과 세계화 추세는 인간의 사회활동 범위를 크게 확대했다. 21세기 초연결시대의 한 단면이다. 2018년 한 해 동안 3780만 대의 비행기가 이착륙했고, 이를 43억 명이 이용했다. 이는 매일 약 1200만 명 꼴이다. 감염병 대응체계가 국가를 넘어서 글로벌해야 효과가 있다는 점을 말해준다.
○ 인구의 27%가 면역을 가지면 꺾인다
메르스가 맹위를 떨치던 2015년 어느 날 필자는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에 개설된 ‘식량 생명 질병’ 과목을 청강하고 있었다. 담당 교수는 인간이 질병과 어떻게 싸우며 잘 견디어 왔는지 설명했다. 그때 필자의 머릿속에 질문이 떠올랐다. 혹시 인간이 막아내지 못하는 바이러스가 나타난다면 어떻게 될까? 인간을 멸종시킬 정도의 바이러스는 어떤 조건을 가진 것일까? 만약 그런 놈이 나타난다면 인간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필자는 연구실의 학생들과 함께 컴퓨터 모의실험으로 감염병 확산 연구를 시작했다.
우리 연구팀은 전염병의 확산은 감염성, 지속성, 사회구조의 3가지 특성에 의해 결정된다고 봤다. ‘감염성’은 인간의 자체 감염력 정도와 병원체 특성, 접촉 여부 등에 의해 결정된다. ‘지속성’은 감염 이후 잠복기를 포함해 완치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뜻한다. ‘사회구조’는 한 사람이 일정한 시간당 접촉하는 사람의 숫자를 나타낸다. 또한 감염병에 노출된 사회(구조·인구)를 나타내는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이 네트워크는 인구와 평균 접촉자 수를 표현한다.
예방약이나 치료제가 나타나기 전의 상황을 가정해 다양한 특성을 가진 감염병을 네트워크에 감염시키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실행했다. 그 결과 감염자의 증가세가 ‘꺾이는 점’이 존재함이 드러났다. 면역력을 가진 사람이 많아지면 전염 경로가 차단되기 때문이라고 해석된다. 그러나 증가세가 언제 꺾일 것인지는 미리 알기 어렵다. 주식 시장에서 주가의 피크 점은 사전에는 알지 못하고, 상황이 지난 후에나 알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선행지수를 통해 증가세가 ‘꺾이는 점’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연구팀은 그 선행지수가 전체 국민 대비 ‘누적 회복자(면역자) 및 사망자’ 비율임을 확인했다. 예를 들어 특정 감염병의 감염률이 33%, 지속 기간이 7.6일이고, 평균 접촉자 수가 10명이면, 누적 회복자 및 사망자 비율이 16.53%일 때 증가세가 꺾이는 것으로 예측됐다. 그리고 여하한 경우에도 회복자 및 사망자 비율이 27%가 되면 감염자 증가세가 꺾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떤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가장 치명적일까? 감염률이 높고, 지속 시간이 길며, 치사율이 매우 높은 감염병이다. 혹시 치사율이 100%인 바이러스가 나타나도 감염률이 낮거나, 감염시킬 수 있는 지속 기간이 짧으면 모든 인간을 감염시키지 못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감염병도 접촉자 수를 하루 평균 7명 이하로 줄이면, 전체를 감염시킬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적 거리 두기 운동이 절대적으로 중요함을 알 수 있다.
○ 다음 바이러스를 맞이하는 법
대부분의 바이러스처럼 이번 코로나19도 멸종시키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동안 지구상에 나타났던 수많은 병원체처럼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가 될 가능성이 높다. 메르스는 중동에선 산발적으로 발생하는 풍토병이 됐고, 홍콩독감과 신종플루는 계절 독감이 됐다. 코로나19 바이러스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인간의 면역체계는 호르몬의 영향을 받는다. 호르몬은 체온이 내려가면 활성화 정도가 떨어진다. 그래서 체온이 떨어지면 면역체계가 약해진다. 추운 날 감기에 잘 걸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체온 관리를 잘하면 면역력이 좋아진다는 말이다. 코로나19가 여름이 되면 다소 수그러지다가 겨울이 되면 다시 번질 가능성이 있는 것도 그래서다. 바이러스가 변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면역력이 변하기 때문이다. 역사 속에서도 기후와 감염병 사이의 관계를 찾을 수 있다. 14세기 유럽에 페스트가 창궐하던 시기는 평균기온이 떨어지고 기상이변이 많던 때였다. 반대로 기후가 온화했던 10∼13세기에는 유럽 인구가 4배로 늘어났다.
지구의 원래 주인은 박테리아 같은 단세포 생명체와 바이러스 같은 것이었다. 지구의 나이를 45억 년으로 보는데, 35억 년 전의 박테리아 흔적이 화석에 남아 있다. 지구상 최초의 생명체다. 박테리아가 모든 생명체의 조상이라는 말이 된다. 모든 식물과 동물은 이 단세포에 돌연변이가 거듭돼 만들어진 변종들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돌연변이를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돌연변이가 없었더라면 우리 인간도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계속해 바이러스도 변하고 인간도 변할 것이다. 이를 전쟁으로 볼 수도 있고 공생으로 볼 수도 있겠다. 지구상에서 인간과 바이러스가 서로 영역을 인정하며 공존한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한다. 사냥총으로 멧돼지가 인간의 영역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경계를 지키며 공존하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부터 다음 바이러스를 예측·연구하고, 예비군 훈련처럼 위기대응 시스템을 작동시키자. 다음 바이러스를 한결 가볍게 맞이하고자 한다면 한국이 앞장서서 주요 20개국(G20)과 글로벌 바이러스 연구, 방역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광형 KAIST 바이오뇌공학과 및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초빙석좌교수
서울대와 KAIST, 프랑스 국립응용과학원(INSA)에서 공부했다. 1985년부터 KAIST에서 인공지능, 바이오정보, 퍼지이론, 미래예측 분야를 연구 및 교육하고 있다. 현재 KAIST 교학부총장을 맡고 있으며 대통령소속 국가교육회의 위원, 국방부 국방개혁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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