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가 보는 미래사회]서태평양 넘보는 中에 美 뒤늦게 대응… 한국 전략가치 증명할때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13일 03시 00분


〈5·끝〉정호섭 교수 ‘美中 해양패권 영향’

미국 일본 프랑스 호주의 해군이 2019년 5월 인도만 뱅골만 해역에서 연합 해상훈련을 하는 모습. 동아일보 DB
정호섭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초빙교수
정호섭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초빙교수
한국은 세계 9대 무역국으로서 해상수송을 통해 번영하며 생존한다. 2018년 기준 한국의 대외무역 의존도는 70.4%이며 수출입 물동량 가운데 무게를 기준으로 99.7%가 바다를 통해 수송됐다. 그만큼 해양안보가 중요하지만 먹구름이 끼고 있다. 서태평양에서 미중 간 힘의 균형이 중국 쪽으로 기울어지면서 양국 간 무력충돌 가능성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 역전되는 서태평양 힘의 균형

중국은 지난해 10월 건국 70주년 퍼레이드에서 다양한 첨단 탄도미사일을 선보였다. 대만 등 지역 내 위기가 발생할 때 미 해군의 접근을 차단하고 궁극적으로 서태평양에서 미국을 몰아내기 위한, 소위 ‘반(反)접근/지역거부(A2/AD: anti―access/area denial)’ 무기다. 중국은 러시아와의 전략적 연대를 통해 오래 잠재했던 북방의 위협을 제거하고 국력을 해양으로 집중하며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특히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팽창은 이렇다 할 저항 없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 시간이 흘러 현 상황이 고착되면 세계 물동량의 약 50%가 통과하는 남중국해는 중국의 내해(內海)가 된다. 특히 해군력을 빠르게 증강하고 있다. 미 의회조사국의 올해 3월 분석에 따르면, 2030년 중국 해군은 275척의 대형 전투함을 비롯해 총 425척의 함대를 보유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미 해군은 총 300척 정도의 함정을 보유하고 있다. 이 중 서태평양에 전개된 미 7함대는 50여 척을 갖고 있을 뿐이다. 물론 함정 수로 해군력을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지역 내 힘의 균형은 중국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중국의 목표는 확실하다. 서태평양지역에서 미국을 내쫓은 후 부동의 정치, 경제, 군사패권국이 되는 것이다. 아직 세계 최강 미국의 지위를 빼앗지는 못하지만 필요시 그 영향력을 상쇄할 만한 초강대국이 되기를 중국은 희망한다.

이러한 배경에서 중국의 반접근/지역거부(A2/AD) 전략이 등장했다. 대함(對艦)미사일, 잠수함, 기뢰 등 비대칭수단을 통해 미 해군의 서태평양 개입을 막으려는 것이다. 중국은 일본∼대만∼필리핀∼말레이시아로 연결되는 제1도련(島련) 내 해·공역을 통제하고 일본∼괌∼파푸아뉴기니로 이어지는 제2도련 외곽으로 군사력을 투사하는 능력을 집중 증강하고 있다. 이미 중국은 해경, 해상민병대 등 비군사적 수단을 이용해 미국과 무력분쟁을 유발하지 않는 가운데 많은 정치, 영토적 이득을 달성했다. 그 결과 이제 남중국해는 미국과의 전쟁을 제외한 상황에서는 중국이 통제 가능한 상태라고 미 인도태평양사령관은 말한다.

○ 미국의 오판과 인도태평양전략

그동안 미국은 남중국해는 핵심이익이 아니라는 전략적 오판 속에 중국의 불법행동을 사실상 방치해 왔다. 기껏해야 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 작전을 실시하며 중국을 견제하고 있을 뿐이다. 중국의 해양팽창에 저항하는 필리핀이나 베트남의 지원 요청에도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지역안보에 대한 미국의 공약(公約)이 말 그대로 공약(空約)이 됐다.

미국 내에서도 ‘너무 늦었다. 이미 상황은 끝났다’는 비관적인 시각이 존재한다. 심지어 혹자는 ‘역외 균형전략(Off―Shore Balancing)’을 주창하고 나섰다. 미국은 해외전쟁 개입을 가능한 한 억제하되 사활적 국익이 걸린 경우, 즉 유라시아에서 힘의 균형을 깨뜨리는 패권국이 등장할 때에만 개입하고 이를 통해 힘을 비축해 패권적 지위를 유지하자는 개념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중국에서는 미중이 태평양을 ‘분할 지배’(?)하자는 극단적인 주장도 나왔다.

미국이 소극적 개입 전략을 선택할 때 어떤 일이 발생할까? 태평양의 분할점령은커녕 오히려 더 심각한 상황, 즉 서태평양은 중국에 넘어가고 미중 간 전선은 미 본토 서해안이 될 것이다. 미국이 태평양전쟁에서 얻은 교훈은 자국 안보가 태평양 전역에 대한 해양통제를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등장한 것이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이다. 즉, 미국은 인도를 끌어들여 중국의 인도양 진출을 견제하는 한편 동맹 및 파트너와의 유대를 강화하고 지역 내 전투준비태세를 증강함으로써 서태평양에서 주도적 위치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 정책으로 이 전략이 향후 어떻게 될지 쉽게 예측할 수 없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지역 내 미중 간의 무력분쟁 가능성이 남아있다. 현재 지역 바다 어디에서든 미중 간 우발적 충돌 가능성은 존재한다. 나아가 중국 지도자들은 중국을 과거 명(明), 청(淸) 같은 세계 중심국으로 재건하지 못하면 중국 공산당에 의한 지배가 위태롭게 된다고 믿는 것 같다. 공산당의 지배를 영속화하기 위해 필요하면 무력분쟁도 불사할 수 있다는 의미다.

○ 미국, 중국 공격 억제 능력 보여줘야

미국은 지역 내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해 힘과 억제력, 그리고 필요시 싸울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 현재의 미중 경쟁이 군사충돌로 악화될 경우, 과연 미국은 어떻게 싸울까?

세 가지 시각만 살펴보자. 먼저 미 랜드(RAND) 연구소가 2016년 발표한 보고서(War with China: Thinking through the Unthinkable)는 미중 간 재래식 전쟁이 일어나면 양국이 엄청난 피해만 입고 승자는 없는 지연전이 되므로 미국은 고강도의 장기전을 준비하고 이러한 의도를 중국에 알려서 전쟁을 억제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이 보고서는 한국은 대중(對中) 전쟁에 참전하지 않을 것이나, 일본은 확실하게 참전하며 증강된 자위대 전력이 전쟁의 향방과 결과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한편 2018년 미 국방전략(NDS)은 모든 합동전력은 강대국에 대한 최고수준의 전투수행에 대비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특히 미국의 해양통제가 더 이상 당연시될 수 없는 서태평양에서 미 해군은 ‘분산해양작전(Distributed Maritime Ops.)’ 개념을 채택하고 10척의 무인수상함(USV)으로 구성된 유령함대(ghost fleet)를 건설하고 있다. 이는 중국의 ‘A2/AD’ 위협 하에 생존 가능하면서 살상력 있고, 신속하게 획득 가능한 전력이다.

특히 미국의 서태평양 군사 전략은 중국의 ‘A2/AD’ 전력을 제1도련 내에서 봉쇄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지난해 미국의 전략예산평가센터(CSBA)가 발표한 보고서는 서태평양에서의 거부적 억제 개념으로 ‘해양압박 전략’을 제시했다. 중국이 도발할 때 미국이 초전에 중국의 공격을 지연, 거부하는 능력을 과시하지 않을 경우 중국은 미 증원전력이 현장에 도착하기 전에 공격을 완료할 수 있다. 그러면 미국은 속수무책이 되거나 분쟁을 확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이를 예방하려면 중국의 ‘A2/AD’ 영역 내 제1도련을 따라 지상에 생존 가능한 정밀 미사일 전력을 배치해 중국군을 공격하는 한편 멀리서 미 해군과 공군의 압도적 화력이 중국군을 추가로 압박해야 한다고 이 보고서는 제언한다.

○ 한국, 해양안보 역량 키워야

문제는 이러한 미국의 서태평양 작전 구상에서 한국의 역할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제1도련 내, 즉 중국 중심적(China―centric) 지역에 위치한 탓에 한국이 수행할 역할이 없거나 극히 제한된다는 뜻이다. 심각한 것은 미중 간 패권경쟁에서 한국은 결국 미국 편에 가담하지 않거나 중립을 선택할 것이라는 시각이 미국에서 적지 않다는 점이다. 그들은 ‘한국은 스스로의 전략적 가치를 미국에 증명해야 할 때’라고 이야기한다. 이런 상황에서 핵·미사일 능력을 완성해 가는 북한은 중국 편에 서서 과연 어떤 도발행동을 할지 예측불가하다. 한마디로 심각한 안보 위기가 올 수 있다.

결국 미중 간 해양패권 경쟁 와중에서 생존하고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억제하기 위해서 한국은 지속적으로 한미 연합방위체제를 강화해야 한다. 그리고 지역 해양안보 활동에도 적극 참여해 안보협력의 종심(縱深·작전범위)을 확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스스로의 해양안보 역량을 꾸준히 증강해야 한다. 특히, 해군과 해경은 국가위기 시 하나의 함대처럼 일사불란하게 임무수행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필요할 때 신속한 전투력 보강이 가능하다.

또 과거사 문제로 소원해진 한일 안보협력도 차츰 정상으로 되돌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무역국으로서 한국과 해양안보 이익을 공유하는 일본을 한국의 지원세력으로 만들자는 뜻이다. 한반도 근해에서 위기가 발생할 경우 미 해군이 우리가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지원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무역을 통해 번영하고 생존하는 한국은 지역의 안보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미래 해양안보를 지혜롭게 준비해 나가야 한다.
 
◇정호섭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초빙교수
영국 랭커스터대에서 국제정치학 박사과정을 마치고 제31대 해군참모총장(예비역 대장)을 지낸 후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초빙교수로 일하고 있다. 주 연구 분야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해양안보, 미일 안보관계, 군사전략·정보다.
#해양패권#서태평양#남중국해#인도태평양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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