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의 ‘두려움’은 어디로 갔나[문병기 기자의 청와대 풍향계]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14일 03시 00분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21대 총선 사전투표 첫날인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주민센터에서 투표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21대 총선 사전투표 첫날인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주민센터에서 투표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병기 기자
문병기 기자
“굉장히 두려운 일이다. 정말 등골이 서늘해지는, 등에서 식은땀이 나는 그런 정도의 두려움이라고 생각한다.”

2018년 6월 18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는 들뜬 분위기였다. 얼마 전 끝난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압승을 거두자 청와대 참모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입장하는 순간까지 만개한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정치에 참여한 주요한 이유 중의 하나,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를 이뤘다”면서도 “그것은 오늘 이 순간까지”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선거에서의 승리가 다음 선거에서 아주 냉엄한 심판으로 돌아왔던 경험을 우리는 많이 갖고 있다”고 했다.

내일(15일)이면 4·15총선이 열린다. 문 대통령의 등골을 서늘하게 했던 두려움이 기우였을지, 아니면 냉정한 예측이었을지 내일이 지나면 판가름 날 것이다.

하지만 이미 낙승을 예상하는 여권의 분위기 속에선 두려움의 정서를 좀처럼 찾기 어렵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선거 일주일 전부터 “승기를 잡았다”며 더불어시민당과 합친 단독 과반 전망을 내놓자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10일 “비례 의석을 합쳐서 범(汎)진보 180석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고 자신했다. 청와대 역시 낙관적인 분위기를 감추지 않는다. 여당 내부에서조차 “선거 다 끝난 것처럼 오만한 태도는 안 된다”며 “3일만 참자”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다.

여권의 자신감이 지방선거 이후 1년 10개월간의 국정 성과가 좋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른바 ‘조국 사태’로 인한 극심한 국론 분열에 중도층이 등을 돌리면서 문 대통령 국정 지지율이 40% 밑으로 떨어졌던 것이 불과 6개월 전이다. 신규 취업자 수가 늘었다지만 소득주도성장 논란과 실업 대란의 후폭풍 속에 올해 1%대 경제성장률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청와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망자 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하위권이라며 코로나19 극복론을 띄운다. 하지만 의료진의 헌신과 성숙한 시민의식까지 정부의 공로로 평가하려면 사태 초기 느슨했던 방역망이 빚어낸 확진자 폭증 사태와 ‘마스크 대란’, 온라인 개학 이후 계속되고 있는 혼란에 대한 책임도 정부 몫이다.

두려움이 사라진 여권의 분위기 이면에는 막말 논란으로 자중지란을 보인 야당의 실책과 함께 비례대표 위성정당으로 펼쳐질 ‘새 세상’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됐다. 여권이 내놓은 ‘범진보 180석’ 계산에는 민주당과 비례대표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 ‘친문(문재인) 정당’을 표방하는 열린민주당은 물론 정의당과 민생당이 포함됐다. 20대 국회에서 ‘4+1 협의체’를 통해서도 선거법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을 통과시킨 여권으로선 그토록 기다리던 ‘완전한 주류 교체’의 순간이 코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이해찬 대표가 유튜브 방송에서 “과반수를 넘기게 되면 여러 정치개혁 과제들을 그동안보다는 더 쉽게 처리를 해나갈 수 있고 재집권 기반이 만들어진다”고 “이렇게 좋은 세상이 오면 출마를 했을걸…”이라고 했다.

선거 결과는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 하지만 걱정스러운 대목은 두려움이 사라진 여권의 태도가 15일 이후 국정 운영에 그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여당에선 벌써 총선 승리를 공수처 설치와 포용적 성장에 대한 ‘국민적 지지’로 보고 적폐청산에 나섰던 임기 초처럼 강력한 드라이브를 몰아칠 태세다. 협치와 통합의 약속은 사라지고 일방통행식 국정으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총선이 끝나면 문재인 정부 청와대는 3기로 접어든다. 여당의 예상대로 총선에서 승리한다면 김영삼 정부 이후 처음으로 임기 중 치러진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하는 정부가 된다. 바꿔 말하면 승리 이후 오만에 취해 심판대에 오른 정권이 숱하게 많았다는 얘기다. 지금이야말로 ‘등골 서늘해지는 두려움’이 필요한 때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4·15총선#더불어민주당#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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