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닷새 앞둔 10일 저녁. 서울 관악구에 있는 한 스튜디오에 관악을에 출마하는 후보 7명 가운데 5명이 모였다. 마지막 표심 잡기에 분초를 다투는 출마자들을 이렇게 한데 모은 건 다름 아닌 ‘지역 청년’들이었다.
행사를 주최한 단체는 ‘관악청년문화예술네트워크’라는 지역 청년 모임이다. 이들은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20, 30대 청년들이 참여하는 문화 예술 행사들을 기획하고 주도해 왔다. 이번에는 총선을 앞두고 “후보들과 소통하고 싶다”며 자리를 만들었다.
이날 만남은 일반적인 선거 토론회와는 사뭇 달랐다. 흔히 볼 수 있는 공약 검증이나 상대 후보 비방은 없었다. 대신 학창 시절 별명이나 좋아하는 영화 같은 지극히 가벼운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렇게 ‘별것 아닌 소재’로 30여 분 대화가 오간 뒤 서로 궁금한 걸 묻는 시간도 주어졌다. 한 후보자는 “요즘 청년들의 결혼관”을 물었다. 한 여성 참석자는 “결혼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달라”고 답했다. 얼핏 보면 친목 도모의 자리로 비칠 정도. 행사를 기획한 한 20대 청년은 “정치나 정당이 내세우는 거대담론 말고, 지역사회와 청년들이 관심 있는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고 했다.
어떤 이들은 이런 자리에 혀를 끌끌 찰 수도 있다. 정치·사회적 난제가 쌓인 마당에 한가하다며 질타를 보낼지도 모른다. 하지만 총선을 앞두고 최근 동아일보 취재팀이 마주한 10대나 20대 상당수는 ‘젊은층의 정치적 무관심’이 아닌 ‘젊은층에 대한 정치인의 무관심’을 꼬집었다. 생애 첫 선거에 참여하는 한 고3 유권자는 “선거 연령을 낮출 때는 치켜세우더니 정작 유권자가 되니 관심조차 없어 보인다”며 “정책 홍보물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공감이 가는 부분이 없어 누구를 찍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사실 올해 총선에 임하는 정당들이 ‘청년’을 언급하지 않은 건 아니다. 상당한 젊은 인재를 영입하고 너 나 할 것 없이 청년을 주요 키워드로 삼았다. 54만 명 새내기 유권자의 첫 선거를 축하하는 메시지도 다들 내놨다. 그런데 왜 청년들은 자신들을 위한 정책이나 간담회가 ‘없다’고 여길까.
“대부분 선언적인 내용들뿐이라 그런 게 아닐까요. 별로 와 닿지 않는, ‘기성세대’의 눈높이에 맞춘 청년 공약들이더라고요. 당선된 뒤엔 나 몰라라 하는 것도 엇비슷하고.”(20대 대학생 A 씨)
청년 토크쇼는 좋은 분위기에서 마무리됐다. 한 후보자가 일정상 조금 먼저 일어서자 한 청년이 다가섰다. “나중에 인사드려도 반겨주실 거죠?” 청년들이 원하는 건 어쩌면 진짜 자신들의 얘기를 들어줄 정치인이 아닐까. 총선 때만 다가오는 게 아닌, 일상을 주고받는 수다스러운 정치인을 청년들은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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