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트섬의 비극[횡설수설/김영식]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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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시가 코로나19 사망자 가운데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시신을 대서양의 하트섬에 집단 매장하고 있다. 미국 내 사망자가 2만 명을 돌파해 세계 1위로 올라섰고, 뉴욕시에서만 7000여 명이 사망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되자 내린 결정이다. 시신 보관용 냉동트럭마저 부족해지자 무연고자 시신의 확인 시간을 2주일로 단축하는 긴급 조치도 취했다.

▷하트섬은 뉴욕시 브롱크스 북동쪽에서 배로 10분 남짓 걸리는 길이 1.6km, 폭 530m의 자그마한 섬이다. 남북전쟁 기간인 1864년 흑인부대 훈련장으로 처음 사용됐고 이후엔 정신병원, 스페인독감 사망자 무덤, 냉전 시기의 나이키 미사일 기지, 무연고자 시신 안치묘지 등으로 바뀌며 점점 뉴요커의 기억에서도 잊혀졌다. 하지만 코로나19 창궐 이후 하트섬은 매일 20∼30구의 무연고 시신이 몰리면서 뉴욕의 참상을 상징하는 비극의 장소로 변했다.

▷세계 경제의 중심이며 물질문명의 발달을 상징하는 마천루 뉴욕에서 벌어지는 일이어서 놀랍기만 하다. 확산 초기에 전문가들의 경고를 무시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경솔함과 선진국 가운데 유일하게 국가 주도의 공공보험 없이 사(私)보험에 의존하는 미국 공중보건 체계의 허술함도 한몫했다. 그 피해는 의료보험에서 소외된 저소득층에 집중됐다.

▷미국 내 확진자와 사망자 가운데 흑인의 피해가 두드러진다. 시카고의 흑인 비율은 30%인데 확진자의 52%, 사망자의 72%가 흑인이다. 미시간주의 흑인 비율은 14%인데 사망자 비율은 40%에 달했다. 흑인이 당뇨병 등 기저질환을 앓고 있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라는 정부의 설명도 있지만 오랜 기간 있어온 불평등과 부당한 대우가 영향을 미쳤다는 인종 차별 논란이 거세다. 얼굴을 가린 흑인 남성을 범죄자로 묘사하는 문화는 흑인들의 마스크 착용 거부로 이어져 더 큰 피해를 불러온 셈이다. 흑인은 미국 전체 인구의 13.4%를 차지한다.

▷감염병은 빈부(貧富)를 가리지 않지만 그 결과는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호화 요트나 별장에서 자가 격리를 하는 부자와 스포츠 스타들이 있는 반면 굶어 죽지 않기 위해 마스크도 없이 나서야 하는 가난한 이들도 허다하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퇴근 후 관저에서 반려견을 쓰다듬고 독서하는 한가로운 모습을 담은 사회적 거리 두기용 홍보 영상을 찍었다가 역풍을 맞고 있다. 총리의 한가로운 모습 공개가 살기 위해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모욕하고, 위험 현장에서 일하는 의료인에게 못할 짓을 한 것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코로나19 확산이 21세기 지구촌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김영식 논설위원 spear@donga.com
#코로나19#하트섬#시신#뉴욕의 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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