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발표만 믿고 은행을 찾아가면 은행은 일단 안 해줄 궁리부터 하거나, 튼튼하고 큰 기업들만 상대하려는 것 같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영향으로 올해 2월 초 이후 매출이 ‘0원’인 한 무역업체 관계자의 하소연이다. 그는 코로나19 피해 중소기업에는 6개월 이상 대출 만기연장과 이자상환 유예를 해준다는 언론 보도를 보고 곧장 은행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막상 은행에서는 2개월만 유예가 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대출상환 유예를 해준다기에 금융회사들에 전화를 싹 돌려봤는데 정책자금 대출은 해당 기관 동의를 구해오라고 하고, 카드론은 6개월 뒤에 납부유예 이자를 한꺼번에 다 갚아야 한다는 거예요.”
한 자영업자는 기자에게 “대출상환 유예 등 금융지원 대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기사를 더 많이 써 달라”는 e메일을 보내왔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코로나19와 관련한 정부의 금융지원 현장을 다룬 기사에는 댓글이 수천 건씩 달린다. 대체로 정부가 내놓는 각종 지원책이 겉은 번지르르하지만 막상 현장에서는 소상공인들의 기대치에 못 미친다는 얘기다. 사실 정부가 내놓고 있는 금융지원 방안 자체는 과거와 비교해 규모가 큰 편이다. 3조5000억 원 규모의 시중은행 초저금리 대출, 기존 대출의 만기 연장, 원금·이자상환 유예 등을 포함한 전방위적 지원책이 담겨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아쉬움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 것은 정부가 만들어낸 대책과 현장에서의 온도차가 크기 때문이다. 지원책이 효과를 보려면 무엇보다 대책이 일선 현장에서 신속하게 작동해야 하는데, 소상공인들은 애써 은행을 찾아가도 “아직 공문을 못 받았다”, “기다려 달라”는 답변만 듣고 돌아오기 일쑤다. 또 당국은 큰 틀의 가이드라인만 제시할 뿐 각론은 금융회사의 재량에 맡기다 보니 은행들이 이를 소극적으로 운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정부 지원방안의 문구를 은행들이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그리고 최대한 보수적으로 해석하면서 나오는 현상이다.
금융당국은 본보 보도 등 지적이 잇따르자 14일 ‘코로나19 금융지원 특별상담센터’ 운영을 강화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소상공인의 애로사항이 접수되면 관련 사항을 파악해 조기에 해소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것이다.
현장 모니터링을 강화한다는 것은 소상공인들에게 다행스러운 일이다. 다만 이와 함께 정책의 ‘디테일’을 좀 더 챙겨달라는 말을 하고 싶다. 가이드라인이 애초에 더 꼼꼼하게 주어졌더라면, 금융회사들이 정부 방침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며 소극적으로 빠져나갈 여지를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정부 대책 한 줄에 희망을 품고 금융회사를 찾는 소상공인이 아직도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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