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기자가 경험한 투표 절차는 과거 어느 때보다 복잡했다. 먼저 투표소 관계자가 비접촉식 체온계로 발열 여부를 체크했다. 37.5도가 넘는지 확인한 것이다. 이어 손을 소독한 뒤 투표소 건물로 들어갔다. 유권자들은 1m 간격을 유지한 채 길게 줄지어 섰다. 딸과 함께 온 중년부부는 거리를 유지한 채 대화를 삼갔다.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배려가 묻어났다. 투표소 창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환기를 위해서다. 투표를 마친 유권자 대부분은 비닐장갑을 뒤집어 벗었다. 감염을 막기 위한 지침을 충실히 실천한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바꾼 4·15총선 투표소 풍경이다.
올 1월 국내에서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고 약 3개월이 지났다. 15일 0시 기준 확진자는 1만591명으로 늘었다. 사망자는 220명을 넘어섰다. 다만 이날까지 일주일째 신규 확진자가 50명 이하를 유지하면서 일상과 방역의 조화를 이루는 이른바 ‘생활 방역’ 전환이 조금씩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정부도 총선 후 코로나19 확산세의 안정적인 관리를 전제로 생활 방역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에 대한 국민의 피로감이 크고, 소비 둔화 등 위축된 경기를 방치할 수 없어서다.
하지만 생활 방역은 아직 국민에게 낯설고 생소하다. 지금까지 실천했던 사회적 거리 두기나 자가 격리와 어떻게 다른지 혼란스럽다. 코로나19를 취재하는 기자도 헷갈린다. 날씨는 더워지는데 언제까지 마스크를 챙겨야 할지, 생활 방역 단계에서 자제해야 할 ‘불필요한 외출’의 범위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한 30대 직장인은 “마스크를 쓰고 벚꽃놀이를 가는 것과 마스크를 벗고 카페에서 웃고 떠드는 것 중 뭐가 더 위험한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총선은 막연했던 생활 방역을 실제 체험할 수 있는 시험 무대였다. 생활 방역으로 전환하면 일상으로 돌아가는 만큼 감수해야 할 불편이 많을 것이다. 다시 학교에 가고, 종교 행사에 참여하려면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손에 닿는 곳을 주기적으로 소독하고, 1m 거리를 유지하는 등 4·15총선 투표소에서 겪었던 번거로움이 일상이 되는 것이다. 앞서 정세균 국무총리가 13일 “예전 같은 일상으로는 영원히 돌아갈 수 없을지 모른다”고 밝힌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한국은 극단적 이동 제한 없이 방역에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다. 방역 지침을 잘 지킨 국민의 공이다. 적어도 이날 투표소에서 보여준 국민의 모습이라면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일상도 큰 혼란 없이 맞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국민의 적극적인 동참을 이끌어낼 구체적인 생활 방역 지침을 마련하는 건 바로 정부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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