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黨을 담대하게 바꾸겠다”던 당대표
무능·오만한 정부여당 견제하고 나라 무너지는 것 막기 위해 뭘 했나
이기려면 뭐든지 한다는 절박함, 박근혜 정부 총리 출신에겐 없었다
총선 승리 정당에는 3대 법칙이 있다. 외연을 확장하는 혁신적 공천, 진영 심판론을 벗어난 미래 비전 제시, 그리고 절대 오만하지 않은 절박한 태도.
더불어민주당의 민주연구원이 작년 말 발표한 정책브리핑 골자다. 4·15총선에서 민주당은 이 법칙을 모조리 어기고도 제1당이 됐다. 청와대-친문-86세대 위주로 공천하고, ‘코로나 극복’보다 ‘야당 심판’ 구호가 요란했고, “고민정 후보를 당선시켜 주면 국민 모두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을 드리겠다”고 오만을 떨었으나 출구조사 결과는 승리였다.
문재인 정부의 실정(失政)이 코로나19 사태에 묻힌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운도 실력이다. ‘국뽕’에 국민이 잠시 취할 순 있으나 자연과 역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선악의 개념에 동의하지 않는다.
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의 책임이 크다. 선거 이틀 전, 그는 신발 벗고 큰절을 하며 “그동안 우리 잘못을 철저히 뉘우치지 못했다. 큰절을 하면서 몸을 낮추기 시작하니까 그곳에 국민이 계셨고 서민이 계셨다”고 했다. 진작 그런 절박함을 가졌다면 황교안은 공천에서 외연을 넓힐 수 있었을 거다. 국민 눈높이보다 자기 세력 확대가 더 중했는지 통합당과 미래한국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날리기까지 했다.
“민주당이 나라를 망쳤는데도 180석이면 이 나라의 미래는 절망이다. 나라가 무너지는 것은 막아야 하지 않겠나”라고 했던 그의 말대로 이제 국민은 경제와 안보, 자유민주주의가 위태로워진 나라에서 살게 됐다.
사법부 장악에 이어 입법권력까지 거머쥔 청와대 정부의 폭주를 어떻게 막을 것인지, 황교안은 2주 전 영입된 김종인 총괄선거대책위원장만큼도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야당이 잘돼야 정부도 긴장한다”고 했던 김병준 혁신비상대책위원장 같은 리더십도 기억에 없다. 집권당, 아니 문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찬성하지 않는 국민도 통합당은 더 미덥지 않아 표를 못 주겠다는 게 이번 총선 민의다.
집권을 하기 위해 고 김대중 대통령은 군부독재 원조 김종필과 DJP연합을 단행했다. 그것이 현실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길이어서다. 황교안이 진정 나라가 무너지는 것을 막을 결심이었다면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도, 유승민 홍준표 김세연과도 손잡고 총선에서 이겨야 했다. 대표직 아니라 정계 은퇴라도 걸고 지지를 호소했다면 감동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황교안은 삭발 뒤 잘생긴 두상을 드러냈을 때 말고는 어떤 감동도 안겨주지 못했다.
국민의 수준이 그 나라 정치 수준이라는 말은 하지도 말기 바란다. 국민은 현명하지 못해 통합당을 안 찍은 것이 아니다. “정책정당, 민생정당, 미래정당으로 당을 담대하게 바꿔 나가겠다” “3대 ‘문재인 게이트’ 실상을 끝까지 파헤치겠다”고 외치고도 황교안은 국민의 기대를 배신했다.
현 정부의 실정과 박근혜 정부에서 일했던 책임감에 정치를 시작했다는 점에서 황교안은 2011년 문 대통령의 정계 입문을 연상케 한다. 어젯밤 “모든 당직을 내려놓겠다”는 걸 보면 아예 대선 경선 준비에 들어갈 작정인 듯하다.
그러나 황교안이 아무리 훌륭한 인품을 갖췄다 해도 정치에는 안 맞는 인물이라는 느낌이다. 그가 논란의 박찬주 전 육군대장 영입에 집착한 장면은 문 대통령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게 집착하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 주요 당직에 친박 인사를 기용한 것도 친문 인사를 고집하는 문 대통령과 흡사하다. 황교안이 ‘우파 문재인’이라면 설령 대통령이 된대도 문 대통령보다 나을 것 같지가 않다.
꽉 막힌 꼰대 이미지의 통합당과 황교안은 너무나 비슷해서 죽기 아니면 까무러쳐야 할 수구우파 정당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과잉 의전을 마다하지 않는 관료 체질에 유머감각은커녕 자신의 말실수를 비판하는 것조차 노여워하는 ‘그릇’으로는 청년과 여성, 3040세대를 끌어들이기도 어렵다.
황교안이 박근혜 정부 시절 총리로서 불통의 대통령에게 직언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최순실 씨가 청와대를 출입했다는 의혹도 전혀 사실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변한 국회 기록이 남아 있다. 그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 정치인을 수권 정당의 대표로, 차기 대통령감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황교안의 역할은 여기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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