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태로 붕괴된 죽음의 존엄성을 찾아서[광화문에서/김윤종]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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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종 파리 특파원
김윤종 파리 특파원
“코로나는 사람을 두 번 죽인다.”

프랑스 파리 인근, 유럽 최대 농축수산물 도매시장인 ‘룅지스’에서 나오는 한탄이다. 프랑스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망자가 1만5000명에 달해 시신을 안치할 시설이 부족해지면서 이곳은 현재 임시 시신안치소로 운영되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코로나로 잃은 것도 슬픈데, 시신을 시장에 둔다니…. 프랑스만이 아니다. 폭증하는 코로나 환자로 유럽 주요국마다 의료체계가 붕괴돼 병원에 가기 어렵게 됐다. 코로나 증상이 나타나 가족 간 감염이 우려돼도 스스로 격리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 그러다 증세가 극심해져 병원으로 이송돼도 치료 시기를 놓쳐 사망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사망 시 시신은 곧바로 관에 봉인된다. 감염 위험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수의(壽衣)를 입히지도 못한다. “평소 장례처럼 떠나는 가족의 뺨을 어루만져 보거나 가볍게 키스라도 한번 했으면 이렇게까지 슬프진 않을 것”이라는 유족들의 고통이 ‘코로나는 사람을 두 번 죽인다’는 말이 나오게 된 배경이 됐다.

스페인에서는 ‘드라이브스루 장례’라는 용어까지 생겼다. 화장터에 운구차가 줄지어 대기하다 차례가 되면 트렁크를 열어 관을 꺼낸다. 유가족은 마스크를 쓴 채 멀리서 지켜본다. 모든 과정은 5분 내에 끝난다. 이탈리아에선 장례식 자체가 금지다. 부모, 형제자매, 자녀와 함께 묻으려 했던 손 글씨 편지, 그림, 반지도 보낼 수 없다. 시신에 접근하다 감염될 수 있다는 우려로 개인 물품 매장조차 금지됐다.

장례는 죽은 자는 물론이고, 산 자를 위한 삶의 필수 과정이라고 인류학자들은 강조한다. 로버트 포그 해리슨 미 스탠퍼드대 교수는 저서 ‘죽은 자의 지배’를 통해 장례는 죽은 자와 분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산 자가 슬픔을 극복하고 죽음을 인간화하기 위한 행위라고 했다. 장례 과정이 대부분 나라에서 시끌벅적한 이유다. 사회적으로 이처럼 중요한 요소인 장례조차 코로나 사태로 생략되면서 ‘죽음의 존엄성’마저 붕괴됐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1개월 넘도록 매일 유럽 각국 코로나 사망 통계를 체크하고 관련 기사를 쓰면서 전문가들에게 전염병 대유행에 대비한 정책뿐 아니라 죽음의 존엄성을 지켜내는 방법도 묻곤 했다. 종교관, 세계관, 가치관에 따라 생각이 모두 달라 정답은 없었다. ‘내가 나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게 하는, 즉 살아온 날들에 대한 기억의 총합에 인격 성격 욕망이 합쳐진 ‘무언가’가 사라지는 것이 죽음이란 생각을 자주 했다.

그 ‘무언가’가 홀로가 아닌,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만들어온 것이라면 죽음의 존엄성 역시 가족, 친구들과 함께 또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실제 코로나로 장례를 제대로 치르지 못한 사람들이 화상회의 프로그램 ‘줌’을 통해 고인의 기억을 나누거나, 페이스북에 사망자 사진을 모아 추모 공간으로 삼는 사례가 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 사태가 끝나도 언제든 또 다른 전염병이 대유행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죽음의 존엄성을 지키려는 산 자들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전염병 시대의 두려움을 덜어내 본다.
 
김윤종 파리 특파원 zozo@donga.com
#코로나19#존엄성#드라이브스루 장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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