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대 정당들[횡설수설/이진구]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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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35개 정당이 난립한 21대 총선 비례대표 선거에서 30곳이 의석 배정 기준인 3% 득표에 미달했다. 0.0%대 정당도 15개나 된다. 역대 최장이라는 48.1cm의 비례대표 투표용지와 수개표에 들어간 노력이 안쓰러울 정도다.

▷원내교섭단체였던 민생당은 2.71%(75만8778표)에 그쳤고, 우리공화당은 0.74%(20만8719표), 친박신당은 0.51%(14만2747표)였다. 여성추천보조금 8억4000만 원을 챙긴 허경영 대표의 국가혁명배당금당은 지역구 257명 외에도 비례 22명을 후보로 냈는데 비례득표는 0.71%(20만657표)였다.

▷창당은 쉬운 일이 아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중앙당창당준비위원회 결성신고를 한 날부터 6개월 안에 등록신청을 마쳐야 하는데, 17개 광역지자체 중 5곳 이상에 시도당을 구성해야 한다. 한 곳당 최소 1000명의 당원이 필요한데, 주소를 둔 당원을 구하기가 만만치 않다고 한다. 이번 총선을 목표로 결성신고를 냈지만 당원 5000명을 채우지 못한 선관위 등록 ‘창준위’도 24개에 달한다. 자칫 1m 투표용지를 볼 뻔했다.

▷비례대표 후보를 낸 정당은 단 한 명만 당선돼도 모든 후보의 기탁금(1인당 500만 원)과 선거비용을 보전받을 수 있다. 기탁금은 원래 1500만 원이었는데 지난달 공직선거법을 개정하면서 소수정당의 참여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낮췄다.

▷정당이든 개인이든 0.0%대 득표라면 ‘무슨 생각으로 나왔을까’ 하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나미 교수에 따르면 무모해 보여도 나름대로 계산된 행동이라고 한다. 선거 기간에는 군소정당 대표도 어느 정도 대우를 받는 데다, 잠시지만 정치 거물이나 유명인과 같은 반열에 선다는 만족감도 큰 이유라는 것이다. 나르시시즘이 강한 사람은 선거를 당락과 관계없이 거리 곳곳에 자신의 얼굴을 걸 수 있는 무대로 여기기도 한다고 한다. 개인 사무실을 운영하는 전문직에서는 자신의 공신력과 홍보를 위해 출마하기도 한다. 물론 된다는 착각도 있다. 과거 서울 구의회 의원에 출마했던 지인의 아버지는 온 가족이 당선은 턱도 없다고 만류했지만 “사나이 가는 길 막지 말라”고 하다가 370표를 얻고 떨어졌다.

▷전문 분야에 특화된 소수정당은 바람직하지만, 대부분은 그런 바람과는 거리가 먼 것이 현실이다. 이번 총선에 출마하면서 공약 이행 기간을 2016년 6월∼2020년 6월로 적어 선관위에 제출한 당도 있다. 득표율로 참정권을 제한할 수는 없지만, 머릿수만 채우면 정당을 만들 수 있는 것도 뭔가 개운치는 않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총선#소수정당#의석 배정#득표 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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