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에 대해 ‘낡았다’는 느낌이 드는 건 충격적인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언제나 청춘’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살기 때문이다. 이 말을 두고 진짜 청춘들은 그저 비유적 표현이리라 짐작하지만 나이가 들면 알게 된다, 그게 진심의 발로라는 걸.
그렇기에 불현듯 깨달음이 찾아올 때 축 처지고 우울해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낡았다는 걸 일단 받아들이고 새로운 것을 배우려고 노력하면 새 길이 열리기도 한다. 이를 몸소 보여준 사람이 에어비앤비의 글로벌 전략 책임자로 일했던 칩 콘리다.
‘주아 드 비브르 호스피탤리티’라는 부티크 호텔기업을 창업해 24년간 운영했던 콘리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며 경기가 침체되자 2010년에 기업을 매각했다. 여러 강연과 책을 통해 그는 “당시엔 스스로 구식 호텔 경영자라고 생각해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데 두려움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2013년 에어비앤비에서 파트타이머로 일하게 된다. 기업은 커지고, 고객 대응 노하우는 떨어져 여기저기서 불만이 들려오자 고민에 싸였던 에어비앤비 창업자 브라이언 체스키가 도움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입사 당시 그는 수십 년간 쌓은 호텔리어로서의 경험을 아낌없이 나눠줬다는 점에서 멘토였다. 하지만 태동하기 시작하던 공유경제에 대해 지식이 전무했기에 젊은 직원들이 쓰는 회사의 기술용어를 하나하나 물어야 했다는 점에서 인턴이었다. 콘리가 쓴 책 ‘일터의 현자’에 따르면 한 직원은 그에게 “어떻게 그렇게 현명하면서 동시에 그렇게 아무것도 모를 수가 있나”라고 물었다. 그는 세계 최초의 ‘멘턴’이었다.
이후의 이야기는 짐작할 수 있는 대로다. 처음엔 파트타이머였지만 그가 제공하는 경험과 노하우의 가치는 컸고, 그는 멘턴을 벗어나 글로벌 접객 및 전략 책임자로 5년간 일했다. 현재도 콘리는 에어비앤비의 전략 고문으로 재직하고 있다.
콘리의 책을 읽은 한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는 “우리 사회도 앞으로 멘턴이 더 필요해질 것”이라고 단언했다. 세대교체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소명이 됐지만 낡은 세대의 사람들이 내려놓으려는 자세만 돼 있다면 그들의 경험과 지식을 습득해야 한국 사회는 더 빨리, 더 낫게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멘턴이라는 ‘쿨’한 직급이 미국에서나 가능한 일이었지 한국에선 거의 불가능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체면과 타이틀이 중요한 한국 사회에선 아무리 새로운 업종이라도 가르치기만 하려는 태도에서 벗어나 낮은 자세로 배우려는 나이 든 사람을 찾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젊은 CEO가 이끄는 스타트업 입장에선 굳이 ‘꼰대’를 모셔 와야 할 이유도 별로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도 앞으론 바뀔 수밖에 없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코로나19 사태로 한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빨리 변화했고, 한국인들은 그 변화에 적응했기 때문이다. 매뉴얼 사회에 갇혔던 일본, 늘 도와주던 입장이라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 부적응한 미국과 달리 한국은 집단적 창의성과 유연성으로 변화무쌍하게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한국인들은 전 연령대가 골고루 비대면 접촉 문화에 익숙해졌다. 50대 이상의 중장년층이 자녀에게 배워서 모바일로 식재료나 막걸리를 구매하고, 나아가 수천만 원대의 자동차도 사들이는 게 일상이 됐다. 모르면 애들에게 배우면 된다는 깨침도 얻었다.
국제적 질서부터 경영, 사회적 관계, 소비자 습관까지 모든 걸 바꿔 ‘뉴노멀’을 만들어가야 하는 ‘코로나 이후’ 세상에서 경험과 지식을 가진 데다 새 지식에 열려 있는 멘턴들은 훌륭한 사회적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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