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러드 쿠슈너’라는 이름이 유독 귀에 꽂혔던 때는 2018년 하반기였다. 한 외교소식통이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이 북한의 경제개발 프로젝트를 맡았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전했다. 그해 6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싱가포르에서 첫 북-미 정상회담을 가진 이후 북한과의 관계 개선 방안을 검토하고 있던 시기다.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당시 다소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딸 이방카와 사위 쿠슈너 선임고문에게 많은 자문을 하고 있으며, 이들이 백악관의 ‘문고리 권력’이 되다시피 했다는 것은 당시에도 이미 알려진 사실. 그러나 북한에 대해 잘 모르는 인사가 대통령의 측근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런 업무에 손대는 게 적절한지 의문을 지울 수 없었다. 이후 북-미 비핵화 협상이 교착되면서 그의 실력을 검증할 수 있는 기회조차 얻지는 못했지만.
이달 초 백악관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브리핑 연단에 오른 그의 얼굴을 보고 대번에 같은 의문이 생겨난 것은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나서였다. 그가 인공호흡기 같은 의료장비와 물품 공급망을 관리한다지만 그런 업무는 연방재난관리청(FEMA) 소관이다. 쿠슈너 선임고문은 코로나19 TF에 참여하게 된 계기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과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나를 찾아와 ‘생각의 틀을 깨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달라’며 도움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의료 지식과 데이터에 철저히 기반을 둬야 하는 감염병과의 전쟁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사실 쿠슈너의 이름은 트럼프 행정부의 주요 현안이 불거질 때마다 이미 여러 차례 등장했다. 불법이민자 차단을 위한 남부 국경지대 장벽 건설에서부터 중동 평화협정, 마약성 진통제 ‘오피오이드’ 남용 대응, 검찰 개혁까지 그가 도맡다시피 해왔다. ‘모든 부서 장관(Secretary of Everything)’이라는 별명까지 붙어 있다.
툭하면 ‘그림자 내각’ 혹은 ‘막후 실력자’라는 수식어가 달리는 그가 실제 얼마나 실력을 발휘하고 있는지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실제 업무의 성패 여부를 떠나서 국가의 중대 사안을 놓고 지휘 라인의 전문성 논란이 벌어지는 것은 득보다 실이 크다. 정부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고 국민들의 불안감을 부추길 소지가 크다. 족벌주의, 정실인사 문제까지 겹쳐 있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의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1월 31일 중국발 입국자 차단 이후 3월 초 유럽에 대한 봉쇄 조치를 취하기 전까지 2월 내내 대응 공백이 발생했다는 지적에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거짓말과 말 바꾸기, 오락가락 정책, 책임 떠넘기기, 소신 발언을 해오던 의료 전문가 흔들기 등을 둘러싼 논란도 현재진행형이다.
이 와중에 쿠슈너 선임고문은 최근 고급 리조트로 부활절 가족여행을 다녀온 사실이 드러나면서 정부의 ‘사회적 거리 두기’ 지침을 위반했다는 지적까지 받고 있다. 그의 행보가 코로나19 위기 국면에 불거진 트럼프 행정부의 문제를 보여주는 또 다른 단면이 되어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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