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짜인 첩보 드라마 같았다. 올해 1월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서울본부 영업처는 직원들이 있는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 얼굴 사진 여러 장을 올렸다. 공공기관 고객만족도 조사를 담당하는 업체 소속 조사원의 얼굴 사진이었다. 이 조사원은 기차역에서 고속철도(KTX) 등을 실제로 이용한 국민을 대상으로 만족도를 조사하는 업무를 맡고 있었다.
코레일은 역사 내부에 있는 폐쇄회로(CC)TV를 통해 조사원의 동선까지 파악했다. 이후 직원들은 조사원과 마주치며 마치 시민인 양 조사에 응했다. 휴일에 쉬는 직원을 호출해 참여를 독려하고, 직원 가운데 11명은 2회 이상 조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렇게 조사원이 설문조사한 191건 가운데 71.2%인 136건은 시민이 아닌 코레일 직원을 대상으로 이뤄진 것이었다.
국토교통부가 19일 공개한 코레일에 대한 감사 결과 전국 12개 지역본부 가운데 서울, 수도권 서부·동부, 부산경남 등 8개 본부에서 고객만족도 조사에 직원이 개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1월 13일부터 2월 1일까지 전국 25개 기차역에서 진행된 설문조사 1438건 가운데 15.4%인 222건은 코레일 직원이 응답한 결과였다.
코레일 직원들이 이처럼 조직적으로 설문조사를 조작한 이유는 성과급을 조금이라도 더 타내기 위해서다.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공공기관은 연 1회 이상 국민만족도 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경영실적 평가지표에 반영하도록 하고 있다. 이 실적지표는 공공기관 임직원의 성과급 기준으로도 활용된다. 국토부는 “본사 차원의 조직적 개입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지역본부에서 자체 경영실적 평가를 높게 받고, 성과급을 많이 타기 위한 목적 등으로 신분을 속이고 설문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코레일이 조작 행위를 벌인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해 진행된 코레일의 2018년 조사에서도 조작 정황이 있었지만 ‘개인정보보호법’ 등 규정에 따라 이미 자료가 폐기돼 정확한 실체를 밝히지 못했다.
지난해에는 회계 부정 의혹까지 불거졌다. 코레일은 2018년 회계연도 순이익이 2892억 원 발생했다고 결산했지만 실제로는 1051억 원의 적자를 본 것으로 감사원의 감사 결과 밝혀졌다. 일부 회계사항을 누락한 결과, 코레일은 지난해 직원 1명당 평균 1081만 원의 성과급·상여금 등 총 3000억 원 이상을 지급했다. 기획재정부는 뒤늦게 코레일 임원에게 지급된 성과급 50%를 환수 조치했다.
국토부는 올해 설문조사 조작 관련자 가운데 16명은 업무방해 혐의로 수사 의뢰 조치하고, 30명은 문책(중징계 2명 포함)하도록 코레일에 요구했다. 강력한 처벌과 대책 마련을 통해 공공기관의 도덕적 해이가 반복되는 일이 사라지길 바란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