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의 국적[김세웅의 공기 반, 먼지 반]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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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김세웅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
김세웅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
부부 갈등 상담을 하는 분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상담을 원하는 부부가 찾아오면 종이를 한 장씩 주고 큰 동그라미를 그리라고 한다. 이어 그 동그라미가 둘 사이의 문제라고 가정한 뒤 자신이 문제인 부분과 상대방이 문제인 부분을 나누어 보라고 시킨다. 그러면 95% 정도가 상대방 탓, 5% 정도가 자신의 탓이라고 동그라미를 나누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그러면 그는 상대방 몫인 95%는 당신이 어떻게 바꾸지 못하니 일단 당신의 5%를 고치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하면 열에 아홉은 한숨 한 번 내쉬고 일어나 나가 버린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 크게 웃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면 남 탓을 하기 일쑤다. 그래서 그런지 작년에는 중국 미세먼지가 우리의 봄을 망쳐 놓았다고 했다.

그렇다면 과학적으로 보았을 때 정말 대기오염 물질에 ‘국적’이 있을까? 최근 대기 환경을 위협하는 물질은 미세먼지와 오존이다. 이 두 물질은 인간의 활동으로 직접 배출되기보다는 배출된 다른 오염물질들, 즉 질소산화물, 황산화물, 휘발성 유기화합물 등의 광화학 작용에 의해 생성되는 2차 반응 부산물들이다.

올 1, 2월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중국의 생산력 저하 때문에 미국의 연말 쇼핑 시즌에 상품 수급이 여의치 않을 것이라는 뉴스를 종종 볼 수 있었다. 요즘은 코로나19를 어느 정도 극복한 중국이 다시 생산을 시작하려 하는 반면 중국의 주요 시장인 북미와 유럽이 경기 침체를 겪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 공장들이 도산 위기에 있다는 뉴스가 나돌 정도로 세계의 주요 생산시설들이 중국에 모여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 2014년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린 분석에 의하면 중국 내 미세먼지나 오존을 만드는 오염물질 배출 중 약 30%는 중국 외부로 수출하는 재화 생산으로 인한 것이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를 포함한 중국 동쪽 지역의 대기오염이 악화됐고 그 여파가 미국 캘리포니아까지 미치는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진은 미국의 중서부 지역에 집중되어 있던 공업시설들이 중국으로 옮겨간 사실을 언급하며 선진국이 상품은 수입하지만 대기오염은 수출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중국 미세먼지를 단지 중국의 문제로 쉽게 치부하기는 어렵다. 이에 더해 전 세계 초미세먼지의 성분을 연구한 2016년 대기화학 물리학회지를 살펴보면 중국, 한국, 유럽, 미국 등 국가의 차이 없이 도시의 초미세먼지의 주성분은 공통적으로 황산염, 질산염, 암모늄 등이었다. 이렇게 미세먼지는 여권을 들고 다니지 않는 초국적의 문제인 셈이다.

물론 합리적 대기오염 정책을 수립하기 위해 오염물질의 국외 유입량을 정량화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중국 미세먼지’와 같은 감정적인 표현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 미국에 코로나19가 대유행하기 시작할 즈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바이러스’라는 표현을 수차례 써 논란이 일었다. 초기 대응에 미숙했다는 비판을 외부로 돌리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있었다. 과학적인 분석은 이러한 정치적인 표현을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미국 국립보건원의 응급구호 연구소장인 제러미 브라운 박사는 자신의 저서 ‘인플루엔자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질병과의 전쟁의 역사’에서 인플루엔자의 어원이 ‘영향’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단어 ‘Influ‘enza’에서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바이러스 전파와 관련한 과학적 지식이 없던 시절 역병이 별이나 행성의 회전축이 어긋나 생기는 ‘영향’에서 생긴다고 많은 사람들이 믿었다고 설명했다. 이런 믿음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사람들이 안 좋은 일이 발생하면 문제에 이성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어딘가에 책임을 전가하려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2018년 출간된 이 책에서 브라운 박사는 독감 대유행은 언젠가 어디서든 벌어질 수밖에 없는, 피해 갈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이 학계의 의견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는 그 시절을 살아가고 있다. 대기오염이든 독감이든 양상은 다르지만 인류가 겪는 보편적인 문제이다. 편견을 버리고 인류가 같이 고민하고 대처하는 성숙함이 요구된다.
 
김세웅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 skim.aq.2019@gmail.com
#미세먼지#대기오염#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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