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내가 처음 한국에 여행 왔을 때 토속 음식점 중 하나라면서 간 곳이 수제비로 유명한 식당이었다. 밀가루에 소금으로 간을 하고 물로 반죽해 한 덩어리를 만들어 두었다가 준비된 다시물이 끓으면 손가락으로 재빨리 뜯어 넣고 끓여 낸 것이었다.
일본에도 이와 비슷한 음식이 있는데, 스이톤이라 부른다. 가장 오래된 조리법의 하나로 파스타, 만두도 비슷한 방법으로 만든다. 중국 한나라 때 가난한 사람들이 주로 먹던 음식이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빈부 격차를 떠나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한나라 말기에는 황제의 식사에도 오르는 음식이 되었다. 한때 국수의 탄생지를 놓고 이탈리아인지 중국인지 논란이 많았다.
‘온 더 누들 로드(On the Noodle Road)’의 저자 젠린리우는 국수가 실크로드를 따라 중국, 중앙아시아, 이란, 터키, 그리스를 지나 이탈리아에 도착하기 전 이미 각 지역의 특성을 담아낸 비슷한 음식들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중국과 터키를 연결한 실크로드에 40km마다 형성된 간이 쉼터, 즉 카라반 사라이가 그 중심에 있었다. 파스타나 중유럽에서 시작된 국수의 경우 5세기 이후 발전돼 전 유럽에 퍼졌다.
이탈리아의 피자, 파스타는 서민음식이다. 특히 피자의 경우 밀가루 반죽을 익혀 남은 음식을 얹어 먹는 그야말로 생계유지를 위한 정도의 메뉴로 당시 요리책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독일의 슈페츨레와 폴란드식 만두인 피에로기 같은 전통음식도 그렇게 시작된 서민 음식이었다.
2019년 미국 CNN은 설문조사를 통해 이탈리아를 최고의 문화와 요리를 갖춘 나라로 선정하고 파스타, 피자와 더불어 올리브오일을 그 이유로 들었다. 시대에 따라 얼마나 많은 것이 변하는지 놀라게 된다.
일본 사람들은 스이톤을 에도시대(1603∼1868년)부터 다양하게 먹었다. 탄력 있게 반죽해 손으로 찢어 삶거나 부드러운 만두처럼 만들기도 했다. 부드러운 반죽을 스푼으로 떠 끓는 물에 넣고 흐르듯 익힌 국수도 있었다. 이런 밀가루 음식의 가장 특이한 점은 먹기에 부담이 없고 쉽게 만들 수 있어 비상식량으로 종종 사용됐다는 것이다.
1923년 9월 1일 도쿄 대지진 후 폐허가 된 거리에 이 음식을 파는 곳들이 대거 등장했다.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스이톤은 아버지가 들려준 전쟁 이야기 속에 있다. 미군을 피해 산을 돌며 뱀과 달팽이, 도토리와 고사리로 연명하다 거의 굶어 죽을 정도가 될 즈음 전쟁이 끝났다. 미군이 나눠준 밀, 옥수숫가루, 분유를 물에 넣고 끓인 죽이 스이톤이었다. 어쩌다 땅속에서 찾아낸 감자나 고구마가 있다면 행운이었다. 간장과 된장, 쌀, 소금까지 다 떨어지면 소금 대신 바닷물을 끓여 밀가루와 옥수숫가루를 넣고 반죽한 스이톤을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가끔은 모래가 씹히는 이 음식을 두 번 다시 먹고 싶지 않다고 아버지는 회상했다.
그렇게 전쟁을 겪은 세대가 신세대 어린이들에게 이 스이톤을 만들어 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도 있다.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세계 평화를 기원하며 스이톤과 관련된 행사들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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