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야 새야 파랑새야’는 배경을 모르고 들어도 슬프게 들리는 민요다. 3음계로 된 단순한 선율은 가슴을 파고드는 마력을 갖고 있다. 이 민요가 일본군의 꼭두각시였던 관군에게 참수당한 동학 지도자 녹두장군 전봉준과 관련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슬픔은 배가된다. 결국 이 민요는 불의와 외세에 맞서다가 희생된 이들을 위한 애도의 노래니까.
어떤 외국 작곡가가 이 민요를 바탕으로 또 다른 애도 음악, 즉 서양음악 장르로 말하자면 레퀴엠을 만들었다. 지난달에 세상을 떠난 폴란드 작곡가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의 교향곡 5번이 그 곡이다. 그는 한국 정부의 의뢰로 만든 곡을 ‘한국’이라고 명명하면서 이 곡이 한국에 관한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가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도 이 교향곡의 곳곳에 배치된 ‘새야 새야 파랑새야’의 선율을 유심히 들으면, 한국 민요를 모티브로 삼고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이 곡의 백미에 해당하는 마지막 부분이 특히 그렇다. 곡이 끝나기 직전 30초 정도 이어지는 ‘새야 새야 파랑새야’의 선율은 한국인이라면 결코 놓칠 수가 없는 부분이다. 주목할 것은 펜데레츠키가 한국 민요에 밴 슬픈 감정을 장엄한 음악으로 승화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슬픔에 안식과 평안함, 위로의 몸짓이 곁들여진다고 할까. 우리 민요의 3음계 선율과 서구의 음악 형식을 융합시킨 결과다. 어차피 레퀴엠은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그들의 안식을 기원하는 절제된 음악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폴란드 작곡가가 한국인의 고통에 대해 뭘 안다고 우리를 위한 진혼곡을 쓸 수 있겠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인종도, 국가도, 언어도 초월하는 게 인간의 고통이니까 꼭 그렇게 볼 것은 아니다. 게다가 펜데레츠키의 조국 폴란드는 러시아와 유럽의 중간지대에 끼어 무수한 고통을 당한 나라였다. 그런 점에서 폴란드는 유럽의 한국이었다. 조금은 색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위로하는 그의 ‘한국교향곡’이 더 간절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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