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국회도 서로 지켜줘야 하는 ‘선’이 있는 거잖아요. 그게 시간이 갈수록 무너지는 느낌입니다. 국회와 협의하던 기존 체계가 무너지는 기분이에요.”
얼마 전 정부의 한 당국자가 허탈한 목소리로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가구당 최대 100만 원을 주는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범위를 소득 하위 70%에서 전 국민으로 확대하자는 여당의 압박에 아쉬움을 표현한 것이다. 그는 “중간에 총선만 없었어도 상황이 이렇게 엉망이 되진 않았을 건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요즘 정부 내부에는 긴급재난지원금과 관련해 “국회가 해도 너무 한다”는 원성이 들끓고 있다. 당정청 협의를 거쳐 정한 ‘소득 하위 70%’ 기준을 여당이 일방적으로 무효화하며 정부를 다시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정건전성, 재정 집행의 시급성 등을 고려해 격론 끝에 정한 기준을 한순간에 뒤집고는 도리어 “정부가 위기감이 없다”는 식으로 공격하는 게 억울하다고 당국자들은 불만을 토로한다.
실제로 요즘 국회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고 있으면 정치권이 ‘갈등 조정’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여당은 정부와 협의해 결정한 소득기준을 총선을 앞두고 뒤집었고, ‘전 국민 지급’에 동조했던 야당도 선거가 끝나자 ‘도로 70%’를 외치며 혼란을 키우고 있다. 여야와 정부가 이렇게 뒤엉키면서 갑론을박하는 동안 신속성이 생명인 긴급재난지원금의 취지는 무색해지고 있다. 지난달부터 논의가 시작된 재난지원금은 아직도 지급 기준 등이 정해진 게 하나도 없어서 6월은 돼야 지급될 것이라는 예상마저 나오고 있다.
물론 정부도 사태를 키운 책임을 피해가긴 어렵다.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 등 유관부처를 중심으로 태스크포스(TF)까지 구성하며 논의를 했지만 소득이나 자산 기준 등을 정교하게 설계하지 못해 혼선을 불러일으켰다. 맞벌이나 무자녀 가구 등 불리한 계층은 어떻게 달랠지, 코로나19로 소득이 급감한 자영업자의 구제 기준을 어떻게 설정할지 모두 모호한 상태였다. 이런 혼란은 여당이 ‘고소득자 배제’에서 ‘전 국민 지급’으로 돌아설 빌미를 제공하기에 충분했다. 이런 사이에 국민들은 대체 지원금을 받긴 하는 건지, 언제나 돼야 받을 수 있을지 불확실한 상황에 놓여 있다.
청와대 역시 선택과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동안 청와대는 “재난지원금은 국회의 논의 결과에 따른다”는 식으로 일관하면서 이 문제에 대한 책임을 피해간 측면이 있다. 기재부의 주장대로 향후 고용 대책 등을 위해 재정여력을 아껴놔야 한다고 판단하면 국회를 설득해야 하고, 그보다는 재난지원금의 신속성이 우선이라고 본다면 정부를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 훗날 돌이켜봤을 때 서로 자기만 옳다며 싸우고 있는 오늘이 지원금 지급의 ‘골든타임’이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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