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지금까지 크고 작은 남북회담에서 여성을 협상 대표로 내세운 적이 거의 없다고 한다. 아직까지 유교적 사고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어 여성이 권력 상층부에 진입하는 것도, 그 여성에게 협상 권한을 주는 것도 드물다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현송월이 2018년 삼지연관현악단장이란 이름으로 대표 방한했을 때 정부 당국자들은 매우 이례적으로 여겼다.
이런 북한의 문화는 협상 상대방에 대한 결례로도 종종 이어졌다고 한다. 10여 년 전 한 남북회담에서 우리 협상단에 여성이 포함돼 있자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는 것. 한 소식통은 “북한의 태도에 협상 분위기가 흐려질 정도였다”고 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신변이상설이 확산된 이후 그의 여동생인 김여정 당 제1부부장에게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김 위원장이 집무를 볼 수 없는 상황이라면 최근 위세가 오른 김여정이 ‘임시 대리’ 역할을 하지 않겠냐는 관측 때문이다.
3대 세습 정권이 이어지고 있는 북한 상황을 고려하면 김씨 일가 중 한 명이 권력의 바통을 이어받을 가능성이 큰 상황이지만 김여정이 ‘여성’인 점이 북한에선 변수가 될 수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김여정을 공식적인 차기 지도자로 북한 사회가 인정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심지어 권력 뒷전에 밀려난 김 위원장의 친형 김정철을 표면적으로 앞세우고, 김여정과 북한 지도부가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집단지도체제 구축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김여정이 당을 대표하고, 최룡해(최고인민회의), 박봉주(내각), 박정천(군) 등이 각각 세력을 대표해 지도체제를 구축해 서로를 견제하며, 후사를 도모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북한 1인 지도체제의 변화 가능성까지 전망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혼란기가 온다면 명목상의 2인자인 최룡해의 권력이 다시금 커질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김여정은 김 위원장이란 최고 권력자 옆에서 조력자 역할을 하다가 위세가 커진 것인데 김 위원장이란 ‘안전판’이 사라진 뒤엔 힘이 약화될 것이라는 분석 때문이다.
최룡해는 김일성과 빨치산 활동을 함께했던 최현(1907∼1982)의 차남이다. 김일성은 자신보다 다섯 살 많은 최현을 친구처럼 아꼈고, 최현은 김일성에게 김정일을 후계자로 적극 추천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룡해는 몇 차례 혁명화 과정(사상 교육)을 거치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출신성분 등을 바탕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김씨 일가 외엔 처음으로 조직지도부장에 올랐고, 지금도 명목상 국가수반이다. 게다가 북한은 위기 상황에서 중국과 협력할 가능성이 큰데, 최룡해는 북한 내 대표적인 중국통이다.
김 위원장의 현재 상황은 아직 명확히 실체가 드러나 있지 않다. 돌연 건재한 모습을 드러낼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제든 신변이상설은 다시 반복될 수 있다. 문제는 북한의 급변사태를 사전에 예측하기 힘들고, 추후 진행 방향도 가늠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번 김 위원장의 신변이상설을 계기로 북한의 갑작스러운 권력 변화에 대비한 철저한 비상계획을 다시금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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