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신변이상설… 비상계획 재점검해야[광화문에서/황인찬]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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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찬 정치부 차장
황인찬 정치부 차장
북한은 지금까지 크고 작은 남북회담에서 여성을 협상 대표로 내세운 적이 거의 없다고 한다. 아직까지 유교적 사고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어 여성이 권력 상층부에 진입하는 것도, 그 여성에게 협상 권한을 주는 것도 드물다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현송월이 2018년 삼지연관현악단장이란 이름으로 대표 방한했을 때 정부 당국자들은 매우 이례적으로 여겼다.

이런 북한의 문화는 협상 상대방에 대한 결례로도 종종 이어졌다고 한다. 10여 년 전 한 남북회담에서 우리 협상단에 여성이 포함돼 있자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는 것. 한 소식통은 “북한의 태도에 협상 분위기가 흐려질 정도였다”고 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신변이상설이 확산된 이후 그의 여동생인 김여정 당 제1부부장에게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김 위원장이 집무를 볼 수 없는 상황이라면 최근 위세가 오른 김여정이 ‘임시 대리’ 역할을 하지 않겠냐는 관측 때문이다.

3대 세습 정권이 이어지고 있는 북한 상황을 고려하면 김씨 일가 중 한 명이 권력의 바통을 이어받을 가능성이 큰 상황이지만 김여정이 ‘여성’인 점이 북한에선 변수가 될 수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김여정을 공식적인 차기 지도자로 북한 사회가 인정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심지어 권력 뒷전에 밀려난 김 위원장의 친형 김정철을 표면적으로 앞세우고, 김여정과 북한 지도부가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집단지도체제 구축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김여정이 당을 대표하고, 최룡해(최고인민회의), 박봉주(내각), 박정천(군) 등이 각각 세력을 대표해 지도체제를 구축해 서로를 견제하며, 후사를 도모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북한 1인 지도체제의 변화 가능성까지 전망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혼란기가 온다면 명목상의 2인자인 최룡해의 권력이 다시금 커질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김여정은 김 위원장이란 최고 권력자 옆에서 조력자 역할을 하다가 위세가 커진 것인데 김 위원장이란 ‘안전판’이 사라진 뒤엔 힘이 약화될 것이라는 분석 때문이다.

최룡해는 김일성과 빨치산 활동을 함께했던 최현(1907∼1982)의 차남이다. 김일성은 자신보다 다섯 살 많은 최현을 친구처럼 아꼈고, 최현은 김일성에게 김정일을 후계자로 적극 추천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룡해는 몇 차례 혁명화 과정(사상 교육)을 거치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출신성분 등을 바탕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김씨 일가 외엔 처음으로 조직지도부장에 올랐고, 지금도 명목상 국가수반이다. 게다가 북한은 위기 상황에서 중국과 협력할 가능성이 큰데, 최룡해는 북한 내 대표적인 중국통이다.

김 위원장의 현재 상황은 아직 명확히 실체가 드러나 있지 않다. 돌연 건재한 모습을 드러낼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제든 신변이상설은 다시 반복될 수 있다. 문제는 북한의 급변사태를 사전에 예측하기 힘들고, 추후 진행 방향도 가늠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번 김 위원장의 신변이상설을 계기로 북한의 갑작스러운 권력 변화에 대비한 철저한 비상계획을 다시금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황인찬 정치부 차장 hic@donga.com
#김정은#신변이상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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