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정말인가요? 법무부는 전화든 문자메시지든 이메일이든 안내를 해준 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20일 서울 양천구에 있는 서울출입국·외국인청 별관 앞. 외국인 남성 A 씨는 “난민 심사를 다시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이 생겼다”고 알려주자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는 2018년 초 아랍어로 난민 면접을 봤지만 난민 지위를 인정받지 못했다.
A 씨가 난민 심사 재신청을 할 수 있게 된 건, 지난해 6월 법무부 직원들이 난민 신청자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면접조서를 허위 작성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법무부는 후속 조치로 ‘2015년 9월 1일부터 2018년 6월 30일 사이에’ ‘아랍어 통역인’을 통해 난민 면접을 받은 외국인은 심사를 재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2000여 명이 해당된다.
그런데 정작 대상자들은 이런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A 씨처럼 법무부가 해당 외국인들에게 안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난민 신청자의 전화번호가 바뀐 경우가 많아 개별 안내는 하지 않았다. 난민 지원 단체들에는 알렸다”고 했다.
하지만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 보자. 이들에게 재심사는 어쩌면 생사가 걸린 문제다. 난민 신청자는 모국에서 정치적 박해를 피해 온 이가 많다. 난민 심사에서 탈락하면 외국으로 쫓겨날 수도 있다. 그런 이들에게 재심사를 받을 기회는 너무나 소중한 동아줄이다. 실제로 허위 작성 면접조서로 피해를 입었던 B 씨는 올해 초 재심사를 거쳐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법무부가 이 면접조서 허위 작성 사건을 아랍어 통역인의 잘못으로 축소한 점도 개운치 않다. 난민 심사 절차의 시스템 자체가 아니라 한 담당자의 과실로 책임을 한정해 재심사를 신청할 수 있는 수를 축소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면접조서 허위 작성 사건은 속을 들여다보면 대부분 ‘신속 심사’ 과정에서 발생했다. 난민 심사의 적체 현상을 해소하려고 무리하게 신속 심사를 지시한 게 면접조서 허위 기재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동아일보가 입수한 법무부의 2015년 9월 ‘난민 심사 적체 해소 방안’ 문건을 보면 “(난민) 신속 심사 대상은 면접을 간이하게 실시하고 사실조사를 생략한다”고 적혀 있다. 면접과 사실조사는 난민 인정 여부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절차다. 그런데 일반적 심사 기간은 6개월이지만, 신속 심사는 7일 이내로 끝내야 한다. 당시 난민을 면접했던 한 공무원은 “회의 때마다 심사를 빨리 하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털어놨다.
법무부도 허술한 신속 심사 과정이 문제였을 가능성을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가 작성한 ‘(난민 심사) 재신청 처리 방안’ 문건에는 이번에 재심사 허용 기간을 설정한 배경이 “신속 심사 확대 지시(2015년 9월 4일)∼면접 녹화 전면 실시(2018년 7월 1일)”라고 돼 있다.
법무부는 난민 면접조서 허위 작성으로 징계가 최종 결정된 공무원은 1명이라고 밝혔다. 이 1명을 제외하고 모든 책임이 아랍어 통역인 한 사람에게만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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