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로 이번 시즌 프로농구가 조기 종료되면서 현대모비스 양동근(39)은 은퇴를 선언했다. 여전히 정상급 기량을 갖고 있지만 체력에 부담을 느끼고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기 위해 박수를 받으며 떠났다.
양동근이 신인 시절부터 줄곧 호흡을 맞춘 현대모비스 유재학 감독(57)은 며칠 전 3년 재계약을 했다. 이로써 한 팀에서만 20년을 보내게 됐다. 유 감독은 35세이던 1998년 역대 최연소로 감독을 맡아 줄곧 지휘봉을 쥐고 있다. 감독을 파리 목숨에 비유하는 국내 프로 스포츠에서 보기 드문 장수(長壽)다.
유 감독은 숫자 ‘6’을 분신처럼 여긴다. 처음 농구공을 잡은 1972년 서울 상명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등번호로 썼다. 연세대와 기아, 대표팀에서 명가드로 활약할 때도 백넘버는 그대로였다. 유 감독이 2004년 처음 현대모비스에 부임했을 때 가드 양동근이 입단했다. 막내는 등번호를 놓고 고심했다. 형들이 먼저 정하고 남은 번호는 3, 6 두 개뿐. 새 유니폼에 6이 새겨졌다. “유 감독님이 이걸로 하라고 하시더라. 나중에 사연을 듣고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로부터 16년 동안 황금기를 보냈다. 둘이 합작한 챔피언결정전 6회 우승은 감독으로도, 선수로도 모두 국내 최다 기록. 현대모비스는 6번을 영구 결번한다. 현대모비스 전신인 기아 창단 멤버였던 유 감독은 “내게도 큰 영광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유 감독은 무릎 부상으로 27세에 선수 생활을 접었다. 양동근은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까지 건재를 과시했다. 출전 시간이나 부상 관리 등 유 감독의 배려가 없었다면 힘들었을 장수다.
전략이 많아 ‘만수(萬手)’로 불리는 유 감독. 그 바탕은 현미경 같은 세밀한 훈련이다. “수비할 때 50cm만 더 나가” “(그 선수는) 왼쪽을 파는 게 90%이니 그쪽을 막아”라는 식이다. 양동근은 유 감독의 지적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숙소 방에 수십 장의 메모지를 붙여뒀다.
국내 최장수 사령탑은 지도자로 새 인생을 시작할 양동근에게 무엇부터 강조할까. 유 감독은 지난주 양동근을 만나 “어깨에 힘을 빼야 한다. 낮은 자세를 가져라. 주위의 마음을 얻는 게 기술보다 먼저다”라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선수 은퇴 후 첫 직장이던 연세대 코치 시절 경험이 무엇보다 소중했다고 소개했다. “유망주 스카우트를 위해 전국을 돌며 고교 감독, 코치 가방까지 대신 들어줬다. 담배가 수북이 쌓인 재떨이 비우는 게 일상이었다. 학부모와 식사 후에는 먼저 나와 신발도 (신기 편하게) 돌려 놔줬다.” 오랜 세월 젖어있던 스타 의식을 걷어내면서 새롭게 세상에 눈을 떴다는 게 그의 얘기. 그러면서 배려와 소통, 관리의 중요성을 터득하게 됐다.
유 감독은 국내 스포츠의 병폐로 꼽히는 학연, 지연 등에 따른 지나친 연고주의를 멀리했다. 조기 은퇴 배경으로 파벌 싸움에 휘말린 영향도 있다. 주전과 후보, 선후배를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기회를 주고 철저하게 실력으로만 평가한다.
프로배구 삼성화재 감독으로 역대 최다인 8회 우승을 기록한 신치용 진천선수촌장은 “찬바람을 맞아봐야 눈과 귀가 열린다. 그래야 팀을 제대로 이끌 수 있다”고 말했다. 골프에서도 힘을 빼야 굿샷이 나온다. 어디 스포츠뿐일까. 꽃길만 걷던 엘리트가 뛰어난 리더가 된다는 보장은 없다. 완장 찼다고 군림하려다 패가망신할 수 있다.
15년 전 양동근은 평생 한 번뿐인 신인상을 수상한 뒤 감사 선물로 주위에 꽹과리를 돌렸다. 스타 탄생을 알리는 특이한 울림이 있었다. 하지만 꽹과리는 사물놀이에선 장구, 북, 징과 조화를 이뤄야 신명나게 그 흥을 한껏 끌어올릴 수 있다. 혼자 튀어선 좋은 연주가도, 좋은 지도자도 결코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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